근대기 수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천사터 10층 석탑.
1907년 2월, 무장한 일본인 인부 130여 명이 개성 경천사터를 급습했다. 이들은 10층 석탑을 막아서는 개성 주민들을 위협하면서 석탑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해체한 부재들을 달구지 10여 대에 옮겨 실은 뒤 개성역으로 향했다. 경천사 탑 약탈 사건이다. 그 배후는 일본의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야키였다. 순종의 결혼식 참석차 한국에 온 그는 고종이 경천사 탑을 하사했다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였다. 그러곤 인부를 동원해 탑을 해체해 도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밀반출한 것이다.
이 만행을 처음 폭로한 사람은 영국 출신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이었다. 그는 그해 3월 대한매일신보에 이 사실을 보도했다. 선교사이자 고종 황제의 외교 조언자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도 발 벗고 나섰다. 헐버트는 일본의 영자신문을 통해 약탈 사실을 알리고 반환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자 1918년 다나카는 결국 이 탑을 한국에 반환했다.
개성-도쿄-서울-대전-서울. 탑을 해체하고 다시 쌓기를 몇 차례. 경천사 탑의 최근 100년은 우리 근대사의 상흔 그대로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통일이 되면 이 탑이 고향땅에 돌아갈 수 있을까. 헐버트의 기일(5일)을 앞두고 자꾸만 경천사 탑의 수난사가 떠오른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