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합헌]소수의견 통해 본 김영란법 문제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오른쪽)과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선고하기에 앞서 서울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재판관 4명 “한국에서 유례없는 입법”
위헌성을 지적한 5명의 재판관은 각각 △심판 대상에 공직자가 아닌 언론사와 사립학교 임직원을 포함시킨 정의 조항 △음식물, 선물, 경조사비 등 가액 상한선을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에 위임한 조항 △배우자의 식사 대접 등 사실을 신고하지 않을 경우 형사 처벌하는 조항 등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정미 김이수 김창종 안창호 등 4명의 재판관은 “식사 대접 등을 받은 배우자는 처벌을 안 하면서 신고하지 않은 행위만을 처벌하겠다는 불신고 처벌 조항은 우리 형사법 체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극히 이례적인 입법 형태”라고 지적했다. “책임에 상응하지 않은 형벌을 부과해 비례원칙에 어긋나고, 형법 체계상 균형을 상실한 과잉 입법”이라는 것이다. 한국 형사법에서 유일하게 불고지죄 처벌을 규정한 국가보안법에서도 국보법을 위반한 사람이 신고하지 않은 사람보다 무겁게 처벌받고 있다는 근거를 들었다.
이들 재판관은 식사 대접 등의 예외 규정으로서 식사, 선물, 경조사비의 상한액(각각 3만, 5만, 10만 원)을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에 대해서도 헌법상 포괄위임금지 원칙에 어긋나 위헌이라고 봤다. 이 재판관 등은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본질적인 사항은 입법자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며 “대통령령에서 정한 가액은 사실상 국민 모두가 적용받고 실질적 규범력을 가지기 때문에 행정부에 결정을 넘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졸속 입법의 문제점을 꼬집는 의견도 있었다. 조용호 김창종 재판관은 “하나의 조문을 제정 또는 개정하더라도 여론에 호도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내일을 위해 참으로 깊은 고민과 논의를 거듭해 입법해야 한다”며 “민간 영역 중 교육이나 언론만을 대상으로 삼은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 전문가 “합헌 결정으로 혼란 종식 안 돼”
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너무 많은 사람의, 너무 세세한 행동까지를 법으로 규제하겠다는 과잉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교사 및 그들의 배우자 등 400여만 명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을, 비교적 소액 규모까지 규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김완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는 “헌재의 ‘합헌’ 결정은 헌법 해석상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지 법을 현실에 적용했을 때 부작용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국가 위상에 비해 청렴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법으로 청렴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재의 합헌 결정 중 배우자 신고 의무 조항을 가장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북한인가. 국가의 경제 수준과 사회 환경 등을 고려해 법을 만들고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란법의 모호한 규정은 이런 혼란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법이 3만 원을 초과하는 식사 대접에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는데 같은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는 비싼 가격의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마시지 않았을 때 각자의 식비를 어떻게 계산하느냐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은 그 사실을 증명하면 그 비용을 빼고 셈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식사와 술자리에서 각자 얼마어치의 술을 마셨는지를 계산하는 것은 말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법 시행 후 수사 당국의 처벌 기준과 법원 판례가 쌓일 때까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청은 28일 헌재 결정 직후 “일반적인 부정부패사범 단속에 준해 수사하고 표적 및 기획 수사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선 경찰은 접대비 금액을 어떻게 특정할 수 있을지 현실적인 애로를 토로하고 있다. 넓은 규제 범위와 모호한 처벌 규정 때문에 개인에 대한 먼지떨이 식 수사나 표적 수사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김영란법이 사회적 이슈에 비판적인 시각을 제기하는 학계 인사와 언론사 임직원 등을 감시하는 장치로 활용될 우려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동진 shine@donga.com·김도형·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