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의 ‘안락의자 위 해바라기’
그렇다고 유럽과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코코넛 잎 아래서 마오리족 의상을 입고 화가가 완성한 그림은 파리가 최종 목적지였거든요. 유럽 미술계 인사들이 편지로 전시를 상의해 왔고, 판매 현황과 화단 평가를 전했습니다. 유럽에서 품은 미술의 씨앗을 미지의 세계에서 생명력 넘치는 예술로 꽃피우겠노라. 화가는 이런 다짐으로 채운 답장을 보냈습니다. 가끔 필요한 물건도 부탁했지요. 미술 재료가 대부분이었지만 특별 품목도 있었습니다. 유럽의 꽃씨였어요.
미술가는 수준급 정원사였습니다. 꽃도 무척 사랑했습니다. 낯선 땅의 대자연 속에서 고국의 꽃이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편지로 달리아, 금련화, 해바라기 씨앗을 요청했고, 심지어 구입처를 지정하기도 했어요. 올해 4월 바로 그 씨앗 가게, 빌모랭 상사에서 구입한 해바라기 씨앗 영수증이 발견되어 화제였습니다. 꽃씨는 예술가 정원을 장식했고, 미술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해바라기다.” 여덟 살 막내가 꽃을 발견하고 환호합니다. 키도 또래 친구 정도이고, 맨날 웃고 있어 꽃 중에서 최고랍니다.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는 아이가 해바라기처럼 눈부셨습니다. 구김살 없던 첫째와 둘째 아이의 이맘때 모습까지 떠올라 벅찼습니다. 소중했던 과거의 기억이 당당함을 잃은 찌뿌듯한 현재를 위로합니다. 화가에게 정물화도 이런 의미였을까요. 해바라기로부터 안락의자를 선물받은 듯한 인상이 남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