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호 광주호남취재본부장
20일 오전 서울에 사는 60대 독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남 신안이 고향이라는 그는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으로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다고 했다. 고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데 대한 참담함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50만 명에 이르는 전국의 출향 인사들도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라며 2년 전 터졌던 ‘염전 노예 사건’보다 그 충격과 후유증이 오래갈 것 같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천사의 섬’인 신안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섬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언론에서)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사건 이후 신안 주민들이 안전한 섬 만들기를 위해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을별로 안전지킴이를 꾸리고 취약 지역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등 자체 방범을 강화하는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압해읍에서는 CCTV 설치를 위한 모금운동에 50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마을에 50대의 CCTV를 설치하려던 계획을 보류하고 우선 4개 학교 관사에 CCTV 8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임자면, 자은면, 하의면, 장산면에서는 주민 안전지킴이 발대식을 갖고 활동에 들어갔다. 이장과 부녀회원, 학부모 등이 참여해 취약지 순찰을 강화하는 등 범죄 예방에 나서고 있다. 자율방범대가 없는 도초면에서는 청년회 등 젊은층이 나서 안전지킴이를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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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섬’을 브랜드 시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남도는 이제 ‘오고 싶은 섬’으로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전남도는 22일 ‘섬 지역 인권침해 예방 종합대책’을 내놨다. CCTV, 방범창 등 안전시설 장비 개선과 통합관사 시범 설치, 인권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등 사업은 언젠가는 했어야 할 일이다. 장마가 끝나는 다음 달 중순이면 휴가철이 시작된다. 이번 사건의 여파로 섬 피서객이 예년에 비해 크게 줄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럴 때 전남도지사가 전국의 공공기관과 기업체는 물론이고 출향 인사에게 서한문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가고 싶고 또 오고 싶은 섬’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와 진정성을 담은 글이라면 섬을 향해 마음을 닫았던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정승호 광주호남취재본부장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