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문화부장
“‘좋은 관객’을 보고 왔다는 겁니다.”
지난달 김승업 충무아트센터 사장과 안호상 국립극장장과의 점심 모임이 있었다. 마침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공연 뒤 첫 대면이라 자연스럽게 화제가 그쪽으로 옮아갔다.
공연 장소인 테아트르 드 라빌은 현대 무용의 거장 피나 바우슈나 머스 커닝햄의 정기공연이나 화제작들이 오르는 곳이다. 관객의 호불호가 분명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연 도중 퇴장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들이 의자에서 불쑥 일어나면서 생기는 소리는 공연자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고 한다.
좋은 관객에 대한 안 극장장의 설명은 이렇다. “창극은 대부분 처음 본 공연일 텐데도 관객 1000여 명이 금세 웃으며 작품에 빠졌다. 공연장 측에서 우리 작품을 선택한 이유와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는 관객들이었다.”
동석한 김 사장은 공연장과 관객의 관계를 동반자라고 정의했다. “공연장도 음식점처럼 자주 찾는 ‘단골손님’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벗’이 될 수 있는 관객들이 좋은 관객이죠.” 그는 몇 년 전 김해문화의전당 사장 재직 시절 뮤지컬 ‘미스 사이공’ 때 만난 그 벗들을 잊지 못했다. 부산에서 가깝지 않은 거리임에도 공연장을 찾은 일행은 이곳에서 작은 모임을 진행하면서 “큰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2주 전 국립극장에서 열린 ‘음악이 있는 생큐 파티’도 좋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행사였다. 국립극장 패키지 티켓을 구입한 관객 50명을 상대로 공연장 로비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국립창극단과 국립무용단 등 상주 단체의 예술감독과 주역들이 참석해 관객들과 격의 없는 대화도 나눴다. 주요 공연의 장단점과 주역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너무 잘 알고 있어 기쁘면서도 부담이 느껴져 ‘무서웠다’는 게 안 극장장의 말이다.
작품과 관객, 또는 독자와의 관계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다. 좋은 작품이 있어야 좋은 관객들이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작품이 좀 모자라도 인내하고 격려하는 좋은 관객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 꽤 명확하다. 작품 탓, 관객(독자) 탓으로는 문화와 그 사회의 수준을 높일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 한국 영화는 한동안 볼 게 없다는 비난에 시달렸고, 최근까지 한국 소설도 그랬다.
좋은 관객이든 나쁜 관객이든 관객은 있어야 한다. 그 계기가 무엇이든 한번 찾아온 손님을 단골손님, 나아가 벗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