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지정 번호 논쟁 가열
국보 1호를 숭례문(위 사진)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아래 사진)으로 교체해 달라는 입법 청원이 지난달 31일 국회에 제출된 가운데 지정번호가 문화재의 가치 서열이라는 오해를 불러왔다는 의견도 나온다. 동아일보DB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 등은 지난달 31일 “현재 문화재 지정번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정한 것이고, 숭례문은 부실 복원 논란이 있기 때문에 새로 바꿔야 한다”며 청원을 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배기동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문화재는 작아도 고유한 가치가 있고, 상대적으로 서열화할 수 없다”며 “국보 1호를 바꾸자는 주장은 문화재를 서열화하자는 또 다른 얘기”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주요 박물관 관장도 “주민등록번호나 군번에 가치 서열이 있느냐”며 “문화재 지정번호도 그와 같은데 1호가 가장 가치가 높다는 인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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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란 속에 이번 기회에 문화재 지정번호를 아예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배 교수는 “일본 등 다른 나라들처럼 내부적으로만 관리를 위해 번호를 사용하고, 대외적으로는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김우림 전 울산박물관장은 “번호가 있는 이상 학교에서 ‘우리나라 국보 1호가 뭐냐’는 별 의미 없는 시험 문제가 나오는 등 번호가 상대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 같은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번호는 없애는 게 낫다”고 했다.
실제 문화재 지정번호를 대외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북한밖에 없다.
그러나 외부 지정번호를 폐지할 경우 혼란이 올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국보 78호와 83호, 118호는 명칭이 모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지난해 관련 공청회에서 “홍보책자나 교과서 등에서 번호를 빼면 어느 것을 지칭하는지 모호해 혼란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출토지나 소장처를 붙여 구별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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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관계자는 “현행 분류체계가 마련된 지 50여 년이 지나 환경 변화 등을 반영해 분류체계를 기초부터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