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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1호 바꾸자” 주장에 “문화재에 서열 있나” 반론

입력 | 2016-06-02 03:00:00

국보 지정 번호 논쟁 가열




국보 1호를 숭례문(위 사진)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아래 사진)으로 교체해 달라는 입법 청원이 지난달 31일 국회에 제출된 가운데 지정번호가 문화재의 가치 서열이라는 오해를 불러왔다는 의견도 나온다. 동아일보DB

국보 1호를 숭례문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꾸자는 입법 청원이 최근 국회에 제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관리상의 편의를 위해 붙여진 문화재 지정번호가 문화재의 서열로 오해되는 만큼 지정번호를 없애자는 의견도 나온다.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 등은 지난달 31일 “현재 문화재 지정번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정한 것이고, 숭례문은 부실 복원 논란이 있기 때문에 새로 바꿔야 한다”며 청원을 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배기동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문화재는 작아도 고유한 가치가 있고, 상대적으로 서열화할 수 없다”며 “국보 1호를 바꾸자는 주장은 문화재를 서열화하자는 또 다른 얘기”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주요 박물관 관장도 “주민등록번호나 군번에 가치 서열이 있느냐”며 “문화재 지정번호도 그와 같은데 1호가 가장 가치가 높다는 인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도 2014년부터 여러 차례 “문화재 번호는 중요도 순서가 아니다”라며 국보 1호 교체에 반대 의견을 밝혀 왔다.

이런 논란 속에 이번 기회에 문화재 지정번호를 아예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배 교수는 “일본 등 다른 나라들처럼 내부적으로만 관리를 위해 번호를 사용하고, 대외적으로는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김우림 전 울산박물관장은 “번호가 있는 이상 학교에서 ‘우리나라 국보 1호가 뭐냐’는 별 의미 없는 시험 문제가 나오는 등 번호가 상대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 같은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번호는 없애는 게 낫다”고 했다.

실제 문화재 지정번호를 대외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북한밖에 없다.

그러나 외부 지정번호를 폐지할 경우 혼란이 올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국보 78호와 83호, 118호는 명칭이 모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지난해 관련 공청회에서 “홍보책자나 교과서 등에서 번호를 빼면 어느 것을 지칭하는지 모호해 혼란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출토지나 소장처를 붙여 구별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문화재청의 지난해 ‘지정번호 제도 개선 연구’ 용역에서는 대외적으로는 번호를 폐지하는 한편 내부적 관리번호 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문화재와 관련이 있는 시기와 지역, 종류 등을 반영한 코드로 관리하는 방안이다. 현행 번호는 문화재 지정 순서의 의미만 담고 있다.

지정번호 폐지 여부와는 별개로 문화재 분류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문화재청은 2월 한국문화재정책연구원에 ‘문화재 지정 분류체계 개선 기초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현행 문화재 분류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등으로 나뉘는데 같은 성격의 문화재도 다른 항목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안동 하회마을의 양진당은 보물이지만 북촌댁은 중요 민속문화재다. 현행 체계가 문화재 성격별 분류가 잘 되지 않고 유럽 등 해외의 문화재 분류 동향과도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행 분류체계가 마련된 지 50여 년이 지나 환경 변화 등을 반영해 분류체계를 기초부터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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