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M의 글로컬 콘텐츠 전략
《 대중문화 콘텐츠 생산자로서 미국 기업들의 힘은 막강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장르와 플랫폼의 경계가 무너지고 콘텐츠 수요가 다원화되고 있다. 미국 기업 독주의 시대를 지나 새로운 문화 생산자가 도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기존의 주력 업(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문화’라는 키워드로 사업을 꾸려가겠다고 선언한 CJ그룹(당시 제일제당)은 이런 시대 흐름을 선구적으로 읽고 원대한 꿈을 품었다. 영상, 음악 등의 콘텐츠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한국을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도약시키겠다는 꿈이었다. 특히 CJ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콘텐츠 전략을 이원화 구도로 짰다. 영화 ‘설국열차’처럼 구미권까지 전략적 반경에 넣은 대작에 투자하는 범글로벌 전략과 함께 CJ의 내공이 담겨 있지만 로컬 정서에 맞는 글로벌 콘텐츠를 현지에서 제작하는 전략이라는 투트랙을 사용한 것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호(2016년 6월 1호)에 실린 CJ E&M의 글로컬(Global+local) 콘텐츠 전략의 일부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
○ 글로벌 시장 선도자라는 큰 꿈을 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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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제조업에 열중하던 시절이었지만 이 회장은 문화산업이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릴 차세대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선진국들의 전례를 봤을 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5000달러를 넘어서면 국가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지는 게 필연적인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또 좁은 내수 시장도 한계로 지적됐다. 따라서 글로벌 시장 진출은 장기적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였다.
○ 현지 정서를 중시하는 글로컬 전략이 주효
370억 원을 벌어들인 한중합작 영화 ‘이별계약’ 포스터(왼쪽)와 외화를 제외한 베트남 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니 할매다’ 포스터.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획기적인 기획과 아이디어에 현지 정서가 결합된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CJ E&M은 현지화 전략 수립에 나섰다. 한중 합작 형태의 협업을 하면 중국 정부가 규제하는 외화 수입 쿼터의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이런 전략에 따라 ‘대박’을 터뜨린 작품이 오기환 감독의 ‘이별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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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적 소재는 원작에서 그대로 따오되 전개하는 방식은 현지 정서에 맞췄다. 영화 중반까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경쾌함을 유지하다 뒷부분에서는 최루 멜로로 전환시켰다. 중국 관객들은 원작의 ‘잔잔한 드라마’식 전개를 지루해할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 덕분에 중국에서 ‘이별계약’은 한국 영화가 아닌 웰메이드 중국 영화로 여겨졌다.
○ 현지 자원과 공동 생산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글로컬 콘텐츠 전략은 드라마와 예능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조상들의 삶을 재현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렛츠고 시간탐험대’의 중국판은 사천위성TV에서 방송될 당시 역대 최고 시청률(1.60%)을 찍었다. 현재 시즌2 방송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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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는 한국에선 문화산업을 대표하는 ‘골리앗’으로 여겨지지만 글로벌 전장에서는 ‘다윗’에 불과하다. 거대한 자본으로 얽히고설킨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브랜드 화된 콘텐츠를 무섭게 쏟아내는 진짜 골리앗 기업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대기업을 키워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은 문화산업을 미래 먹을거리로 만들기 위해 대형 기업 육성정책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지만 한국은 공정한 경쟁 구도 정착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성연 HBR Korea 에디터 amazingk@daum.net
정리=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