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 특허대국, 한국 어렵게 특허 따내도… 무임승차 노린 소송에 좌절 美日의 2배 특허 무효율… 이러니 ‘특허무용론’ 나온다 창조경제의 꽃 피우려면 제대로 된 특허만 내주고… 일단 발행한 특허는 보호해야
이광형 객원논설위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당연히 A 씨는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그랬더니 B 씨가 특허 무효 소송으로 맞대응해 왔다. 무효 소송이란 특허청이 발행한 특허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침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특허에 분쟁이 생기면 일반적으로 첫 번째로 다투는 과정이 무효 소송이다. 무효 소송은 특허심판원이 1심을 하고 2심, 3심은 특허법원과 대법원이 한다. 특허가 무효 판정을 받으면 거기서 끝이다. 만약 특허가 유효 판정을 받으면 그 다음에는 특허 침해 소송에 들어간다. 침해 소송은 지방법원, 특허법원, 대법원 순서로 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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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이러한 스토리가 특허 업계에서는 그다지 낯선 소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통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2014년에 분쟁이 생긴 590건의 특허 중에 53%가 무효 처리됐다. 동일 기간의 미국 26%, 일본 20%에 비하여 너무 차이가 많다. 시중에 나도는 ‘특허 무용론’의 근거가 바로 여기 있다.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창조경제가 ‘밑 빠진 독’이라는 말도 여기에 기인한다.
숫자로 보면 한국은 ‘특허대국’이다. 2015년 약 22만 건의 특허가 출원돼 약 10만 건이 등록됐다. 세계 5위에 이르는 수치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래성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시비를 걸면 절반 이상의 특허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 특허가 유효 판정을 받았다 해도 침해 배상액이 수억 원 선으로 선진국에 비교하여 턱없이 낮다. 그러니 탐나는 특허가 있으면 침해하고 보는 것이 유리하다.
창조경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기술 거래나 기업 거래의 필요성도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 ‘창조경제 항아리’에 구멍이 났으니, 물을 부어도 차오르지 않는다. 사람은 법을 지키는 것보다 위반하는 것이 이익일 때, 지키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높은 특허 무효율에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특허를 등록시키는 특허청 심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 2014년에 미국 심사관이 70건, 일본 심사관이 173건을 심사한 데 비하여 한국 심사관은 230건을 심사했다. 그리고 자신이 등록시킨 특허가 나중에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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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는 정부기관의 책임의식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특허증은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공식 문서다. 국민은 정부가 발행한 특허증을 믿고 사업을 시작한다. 정부는 믿고 따라온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가 있다. 물론 특허에 하자가 발견되면 바로잡는 것이 맞다. 하지만 53%나 되는 무효율은 선진국에 비해 너무 높다. 그리고 순진하게 믿고 창업한 사람만 혼자 땅을 치며 한탄하게 만드는 정부는 무책임하다.
정부는 4월 6일 ‘중소기업 기술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특허 무효율에 대한 대책은 빠졌다. 제대로 된 특허만 발행하고, 일단 발행한 특허는 보호해주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특허 침해에는 징벌적으로 배상하게 해 예방 효과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창조경제 항아리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이광형 객원논설위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