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작업실에 앉아 포즈를 취한 조영남 씨. 그는 군 복무 시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973년 서울 종로구 한국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작품 활동을 이어 왔다. 동아일보DB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 씨(71) 그림 300여 점을 8년간 헐값에 대신 그렸다”는 화가 송모 씨(60)의 폭로에 조 씨가 “작업 관행일 뿐”이라고 해명한 데 대해 미술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송 씨의 제보를 받은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조 씨의 서울 사무실을 16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조 씨가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을 자신의 그림처럼 유통시킨 것으로 보고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송 씨의 친구로 수차례 설치예술 작업을 함께 했다는 시인 오모 씨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 씨가 송 씨를 공동작업자나 조수가 아니라 아랫사람 부리듯 대했다. 오랫동안 겪은 인간적 모멸감이 폭발해 벌어진 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씨의 소속사 미보고엔터테인먼트 장호찬 대표는 “조 씨가 탈진해 직접 대화가 어렵다. 올해 초 전시 일정이 임박했을 때 빠듯한 방송 스케줄에 쫓기며 급하게 준비하다가 송 씨에게 대작(代作)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작품의 개념 구상은 조 씨의 창작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19일부터 서울 용산구 UHM갤러리에서 열 예정이던 조 씨의 개인전은 취소하기로 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른 법적 책임은 물론 도의적 책임도 달게 지겠다”고 답했다. 조 씨는 진행을 맡고 있던 MBC 표준FM ‘지금은 라디오시대’ 출연을 17일 중단했다.
조 씨와 가까운 대중음악계 관계자들은 조 씨의 혐의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연기획사 대표 박모 씨는 “조 씨가 작업실에서 중심이 되는 소재를 그리면 조수가 여백을 칠해 메우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송 씨가 얘기하는 ‘대량 주문생산’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말했다.
3월 서울 종로구 팔레 드 서울 갤러리에서 열린 조영남 개인전에 전시됐던 2014년 작 아크릴화 ‘극동에서 온 꽃’(위 사진)과 2013년 10월 경남 창원시 송원갤러리의 개관 1주년 기념 초대전에 걸렸던 ‘화투그림’. 동아일보DB
검찰 수사 결과에 관계없이 조 씨의 그림을 산 수집가들은 작품을 중개한 갤러리나 경매회사에 변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7월 서울옥션 자선 경매에 나온 조 씨의 그림 3점은 각각 180만, 210만, 260만 원에 낙찰됐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속초=이인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