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홍콩서 처음 불려진 후, 10여개國에 인권상징 노래로 전파” 정근식 서울대 교수 논문
17일 광주 서구 치평동 5·18기념재단에서 열린 2016광주아시아포럼 해외 5·18기록물 기증자 토론에서 독일 기자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부인과 독일대사관 직원이 인사말을 하며 5월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3일 전남대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제36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세계화: 홍콩 대만 중국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통해 1982년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홍콩에서 노래가 불러졌다고 17일 밝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1982년 4월 광주에서 작곡된 것을 감안하면 작곡 반년도 되지 않아 노래에 영감을 받은 홍콩 시민들이 애창을 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현재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를 자기 나라에 맞게 만들어 부르는 나라는 홍콩, 대만, 중국,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7개국이며 애창하는 국가도 10여 개국이나 된다고 덧붙였다.
홍콩 시민들은 1982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어떻게 부를 수 있었을까. 정 교수는 학생운동과 관련된 국제협력모임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홍콩에 전파했다고 설명했다. 홍콩중문대 앤절라 윙 교수는 1981년 학생 시절 홍콩에서 활발하게 펼쳐진 기독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1982년 YMCA와 한국기독학생회가 서울에서 주최한 청년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들었다.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것에 큰 영감을 느꼈고 이후 홍콩으로 돌아와 노래를 전파했다. 그는 1984년부터 홍콩 노동자 모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가 중국어로 번역된 것을 계기로 악보가 널리 배포됐다고 논문을 통해 밝혔다. 노래 제목은 ‘애적정전(March for love)’, 원작자는 남한 학생으로 표기됐다.
홍콩에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이 두 번째로 전파된 곳은 대만이었다. 대만 노동자 왕리샤(汪立峽) 등은 1988년 가을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노동자대회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들었다.
이들은 귀국한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현지 노동운동의 맥락에 맞게 ‘노동자전가’라는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 시작해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농민들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중국 대학생들도 농민운동을 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정 교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세계화는 한국 학생 노동운동의 역동성이 각 국가 상황에 맞게 확산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국 시민단체에 의해 세계에 퍼진 것이 아니라 영감을 받은 외국인들이 스스로 불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