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에 서툰 요즘 젊은이들, 듣는 사람 배려없이 극존칭 남발해 민망 사회생활 첫발은 격조화법 교육부터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우리말을 배울 때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경어체(敬語體)란 사실엔 나도 동의한다. 한데 그에 앞서 우리말의 기본은 화자(話者·말하는 사람) 입장이 아니라 청자(聽者·듣는 사람) 입장에서 경어체를 써야 함은 기본 중의 기본임을 기억할 일이다. 그 기본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우리 젊은이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입장에서 윗사람이면 교수나 어르신 앞에서도 선배에 대해 극존칭을 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번은 참다못해 마침 대학원생 제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마음먹고 ‘잔소리’를 했다. “어른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항상 듣는 분을 위주로 존댓말을 써야 한다. 교수 입장에서 보면 한참 어린 제자인데 여러분들 입장에서 자신의 선배라 하여 극존칭을 붙이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다” 등등. 이야기를 들으며 얼굴이 어두워지던 학생들 반응은 한결같이 “전혀 몰랐어요” “한 번도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어요”였다. 그러니 몰라서 실수한 걸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지, 기본조차 몰랐다니 더더욱 한심하다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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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존댓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살면서 이모 고모 삼촌들과 어울리면서 야단도 맞고 칭찬도 받으며 밥 먹듯 자연스럽게 배웠다.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살아가면서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관계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방법 중 하나가 존칭어였을 것이요, 존칭어 속에 위아래 서열은 물론이고 서로를 향한 책임과 의무 또한 정교하게 담겨 있었음이 분명하다.
한데 친인척 관계의 번화함이 사라져 간 지금이야 부모 이외에 다른 세대를 접하기 어려운 ‘동년배 중심 사회’인 데다, 자상한 엄마에 친구 같은 아빠 프레디(freddy·친구를 의미하는 프렌드와 아빠를 의미하는 대디의 합성어)가 이상적인 부모상인 바에야, 어디서 존댓말 쓰는 법을 배울 것이며, 더더욱 존댓말의 가치와 의미는 어떻게 체득하겠는가.
덕분에 요즘 세대는 여러 세대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상황에서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직장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부딪치는 일종의 문화충격이, 20대 동년배부터 30, 40대 상사를 거쳐 50대 이상 임원까지 한 공간에 있는 사무실 상황이라는 데는 벌린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결국 존댓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다는 사실은, 살아오는 동안 존댓말을 써야 하는 관계를 굳이 경험해 보지 못했음과 같은 뜻일 게다.
그럼에도 누구든 어디에서든 존댓말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리란 생각이 요즘 들어 간절해지고 있다. 어른들의 진심 어린 걱정이 “꼰대들의 잔소리”로 쉽사리 묻혀버리지 않도록. 듣는 사람을 존중해주는 격조 있는 화법(話法)이 말하는 사람 위주로 돌아가는 버릇없음에 자리를 내주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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