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허승민 소방관
밤이 깊어지자 고원도시인 태백에 부는 바람은 거세졌다. 4일 0시 51분 태백시 동점동에서 강풍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곧바로 119대원들이 출동했다. 이후에도 강풍 피해 신고가 잇따랐고 출동 가능한 119대원들은 모두 현장으로 달려갔다. 응급구조사인 허 소방장위 오전 1시 9분 2차 출동 때 동료들과 함께 동점동으로 향했다.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나뭇가지들이 부러지고 도로변 3층 연립주택을 덮고 있던 강판 지붕 일부가 뜯겨져 도로에 나뒹굴고 있었다. 주민의 안전 확보가 시급한 상황. 당시 이 일대를 강타한 바람은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20m가 넘었다. 일반적으로 초속 20m 정도의 바람이 불 때는 굴뚝이 무너지고, 기와가 벗겨지고, 사람이 걷는 것은 물론 몸의 평형 유지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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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대원들은 즉시 허 소방위를 응급조치한 뒤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의식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에게 내려진 진단은 급성경막하혈종. 구조헬기를 동원해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겼지만 소생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태백의 병원으로 다시 옮겨져 힘겨운 사투를 벌이던 허 소방위는 끝내 12일 오전 8시 16분 세상을 떠났다.
허 소방위는 2003년 소방공무원에 임용돼 그동안 홍천 정선 태백소방서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재난과 사고 현장에서 생명을 구조했다. 그의 동료들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었다”며 “충실한 가장일 뿐만 아니라 부모님께 늘 효도하는 아들이었다”고 전했다. 최영수 태백소방서 현장대응과장은 “자신의 업무인 응급구조 관련 책을 항상 가까이에 두고 공부하는 학구파로 매사 자신의 업무에 빈틈이 없는 열정적인 대원이었다”고 말했다. 한 동료는 “딸이 최근 뒤집기에 성공하고 낮은 포복을 한다고 바보처럼 자랑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원도소방본부는 사고 당시 소방장이던 그를 소방위로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또 국가유공자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허 소방위의 빈소는 태백시 문화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14일 오전 10시 태백소방서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열린다. 고인은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관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태백=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