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뚫자 한숨 나오는 ‘한턱’ 문화
청년실업률 12%라는 암담한 현실을 뚫고 직장을 구한 젊은이들이 각종 ‘턱’을 내느라 또 한번 숨이 ‘턱’ 막히고 있다. 신입사원들은 입사 기념으로 신입 턱, 승진한 사원은 진급 턱을 내야 하는 문화가 곳곳에 남아 있다. 문제는 자발적으로 한턱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한턱내라”는 요구를 거부하면 자신의 평판과 진급, 조직생활에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돼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따라야 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박 씨와 같은 신입 간호사들은 같은 병동 선배들에게 신규 턱을 돌린다. 직속 선배 한 명에게만 선물하는 이들도 있지만 “쩨쩨하다”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어서 대부분 선배 모두에게 신규 턱을 내느라 수십만 원을 쓴다.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2년 차 간호사 이모 씨(27·여)는 “누가, 언제, 신규 턱을 낼지 선배가 날짜까지 정해준다”며 “큰 부담이지만 처음부터 선배들에게 찍히고 싶지 않아 할 수 없이 따른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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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질서가 엄격한 직업군인들은 진급 턱을 세게 낸다. 수도권의 국방부 직할부대에서 복무 중인 김모 중사(33)는 중사 진급 후 일주일 동안이나 진급 턱을 냈다. 군무원, 동기, 부대 내 같은 병과 선배들에게까지 술을 샀다. 자기들끼리 노래방에 간 선배들이 그를 불러 계산만 하도록 한 적도 있다. 김 중사는 “결국 200만 원가량인 월급을 모두 진급 턱에 썼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심지어 인턴사원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의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선배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다. 지난해 B은행에서 정규직 전환제 인턴으로 일한 이모 씨(26)는 면접을 앞둔 인턴 막바지에 다른 경쟁자들이 선배에게 선물을 하는 것을 보고 부랴부랴 다음 날 케이크와 빵을 돌렸다.
이처럼 직장 선배들이 후배에게 경제적 부담을 강요하는 것은 전통으로 포장한 ‘갑(甲)질’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을 할 때 어느 정도의 강제는 필요하지만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까지 상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직원들에게 원치 않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