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세제민 공자, 재화의 분배-안정에 중점… 경제의 목표를 세상의 안녕에 둬 이기심 충족 아닌 공익추구 강조… 오늘날 상생-공존경제와 상통
요즘 ‘상생의 경제’니 ‘공존의 경제’니 하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사실 경세제민이라는 말 속에 이미 그러한 의미가 모두 포함돼 있다. 경제라는 단어 앞에 그런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마치 ‘역전앞’ ‘처갓집’과 같은 의미 중첩일 뿐이다.
물론 공자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어느 정도의 부가 축적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맹자도 백성들은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주장했듯이 경세제민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적 풍요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쓰는 경제라는 말은 경세제민에 담겨 있는 큰 가치를 온전히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다.
진정한 경세제민을 실현하려는 경제인은 자기의 이익보다 공익을 앞세우고, 내가 잘살려 하기보다는 구성원을 돌봐야 한다. 가령 공자 자신은 ‘부귀는 뜬구름과 같다’고 하면서도 백성들을 부유하게 할 방안을 고민했고, 맹자는 ‘백성이야 항산이 있어야겠지만 선비라면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다’고 주장했다. 진짜 경제는 이기심과 물욕의 추구에 의해 꾸려지는 것이 아닌 나눔과 배려, 즉 인간의 인(仁)한 본성의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진짜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만’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타인과 사회를 버린 채 나만 잘되고 우리만 잘사는 방법은 없다. 인류는 저쪽이 죽어야 이쪽이 살 수 있다는 적대적 관계에 있지 않다. 모두가 이웃이고 가족이며 하나다. 마차를 타고 다니는 대부(大夫)의 집에서는 닭과 돼지를 기르지 않고, 여름에도 얼음을 쓰는 큰 부잣집은 소와 양도 기르지 않는, 그래서 타인이 먹고살 수 있는 길을 막지 않는 배려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극도의 물질적 넉넉함을 경험했고, 그것 자체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뤄낸 영광의 상처로서 말이다. 상생과 공존은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니라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자신의 얼굴이다. 이 얼굴을 다시 드러낼 때 ‘보이지 않는 손’의 욕망이 오히려 과거의 유물이 될 것이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