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소록도 찾은 스퇴거 수녀… 1962년 27세때 첫 인연 43년간 봉사하다 2005년 고국으로… “한센인, 가족품 안길때 가장 행복”
26일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에서 마리안 스퇴거 수녀(82·맨위쪽 사진 왼쪽)가 11년 만에 소록도로 돌아온 소감을 밝히고 있다. 아래 사진은 1970년 스퇴거 수녀(뒷줄 왼쪽)가 소록도병원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소록도(고흥)=임현석 기자 lhs@donga.com
푸른 눈의 수녀는 회한에 잠긴 표정으로 국립소록도병원 복도를 천천히 거닐었다. 1962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한 가난한 나라의 섬을 찾아 43년간 한센병 환자를 돌본 마리안 스퇴거 수녀(82)였다. 그가 기억하는 소록도병원은 1930년대 지어진 낡은 병동이었다. 11년 만에 소록도에 돌아온 소감을 묻는 질문에 스퇴거 수녀는 전라도 억양이 섞인 한국말로 “이렇게 아름다운 섬으로 돌아올 수 있어 정말 기쁘다”며 웃었다.
스퇴거 수녀와 동료 마르그레트 피사레크 수녀(81)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 있는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한센인들을 돌보기 위해 소록도에 온 것은 1962년. 간호인력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정부와 전남 고흥군은 올해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헌신을 보여준 이들 두 수녀를 소록도에 초청했다. 그러나 피사레크 수녀는 현재 치매를 앓고 있어 스퇴거 수녀만 한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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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로 불리며 한센인들과 인고의 세월을 보낸 두 수녀는 2005년 건강이 악화돼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그해 소록도를 떠날 때 편지 한 장만 남겼다. 편지에는 “환자들을 돌볼 수 없어 부담만 주는 것이 미안하다”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스퇴거 수녀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소록도를 떠나는 결정이 얼마나 어려웠다고요. 몸이 아파 환자들을 돌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아파서 며칠씩 울었어요. 갑자기 떠난 뒤에도 소록도 친구들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 안부를 전했습니다”고 말했다.
소록도로 돌아온 스퇴거 수녀를 지금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소록도성당에서 미사를 본 14일, 한센인과 의료진이 스퇴거 수녀를 알아보고 “할매”라고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과일을 주려고 다가오거나 손을 꼭 잡기도 했다.
“간호사님이라는 말에서 ‘님’이라는 말이 부끄러웠죠. 친근하게 대해주는 ‘할매’라는 말이 좋아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한센인과 주민들도 저를 좋은 친구로 생각해줬으면 해요.”
스퇴거 수녀는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내가 한 일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 것이 더 힘들고요. 어려운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을 보고 부름을 따랐을 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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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고흥)=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