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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장원재]재해 현장서 빛난 ‘제복의 힘’

입력 | 2016-04-19 03:00:00

[‘불의 고리’ 강진 도미노]




구마모토=장원재 특파원

16일 오전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 역 앞에는 ‘지진으로 모든 구간 운행 중단’이라는 역장 명의의 안내문이 붙었다. 여진 우려로 역이 폐쇄됐지만 직원들은 평소처럼 제복 차림에 모자를 쓰고 역 앞에 책상과 의자를 놓고 앉아 주민들의 문의에 답하느라 바빴다. 두꺼운 열차 안내책자를 책상 위에 두고 한 답변은 똑같았다. “죄송하지만 해당 구간은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역에서 출발하는 모든 열차가 운행 중단된 상태입니다. 언제 운행이 재개될지 알 수 없습니다.” 지진이 마치 자신의 탓인 양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그들의 앞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흥분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중교통이 일절 중단된 상황이어서 취재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택시뿐이었다. 백발에 제복을 차려입은 택시 운전사는 ‘지진이 났는데 괜찮으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릇이 좀 깨지고 가구도 파손됐지만 다행히 가족들은 다치지 않았다. 지진보험에 들어 있으니 나중에 보상을 받으면 된다. 일단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미터기를 눌렀고 일부 도로가 끊어져 돌아가게 되자 “죄송하다”며 목적지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미터기를 껐다.

지진으로 신호등이 고장 난 사거리에선 헬멧을 쓴 경찰들이 수신호로 차량을 인도했다. 호루라기 한 번 불지 않았지만 경찰 신호를 어기는 차량은 없었다.

자기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무질서와 혼란을 막은 ‘제복의 힘’은 급박한 재난 상황에서도 발휘됐다. 규모 7.3의 강진이 일어난 직후 기자가 묵은 호텔 직원은 “건물 붕괴 우려가 있으니 주차장으로 모이라”고 방송을 한 뒤 방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고객의 피난 여부를 확인했다. 유니폼을 입고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불안한 표정을 짓던 투숙객들도 조금씩 평정을 되찾았다.

‘제복의 힘’은 사명감과 매뉴얼을 통해 반복된 훈련에서 나온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등 재해 때마다 활약했던 자위대는 이번에도 최대 피해지인 마시키(益城) 정에 투입돼 실종자를 수색하고 구호물자를 날랐다. 간이목욕탕을 만들고 기와를 치우는 노력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얻자 정부는 투입 규모를 2000명에서 2만5000명으로 늘렸다.

기차역 직원도, 택시 운전사도, 호텔 직원도 지진 피해자였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재해로 생긴 커다란 공백을 메웠다. 국민들은 한마디 불평 없이 따랐다. 일본의 저력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마모토=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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