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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놀라운 우연’에 숨겨진 법칙들

입력 | 2016-04-09 03:00:00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데이비드 핸드 지음/전대호 옮김/300쪽·1만7000원·더퀘스트




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1972년 영화 ‘페트로브카에서 온 소녀’의 주연을 제안받고 서점에서 원작 소설을 사려다가 허탕을 치지만 지하철역 빈자리에 버려져 있는 그 소설책을 발견한다. 더구나 그 책은 소설의 원저자가 자기 친구에게 줬다가 분실된 책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놀라운 우연의 일치에는 뭔가 우리가 모르는 힘이 작용하는 걸까? 영국 런던 임피리얼 칼리지의 수학과 명예교수로 왕립통계학회장 등을 지낸 저자에 따르면 이처럼 극도로 개연성이 낮은 사건도 ‘흔히’ 일어난다. 책은 일상의 사건을 가지고 주요 ‘우연의 법칙’을 설명한다.

한 사람이 로또에 두 번 당첨되는 일도 설명 가능하다. 전 세계에서 운영되는 로또 복권의 수, 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수와 그들이 사는 복권의 수, 그들이 평생 로또에 참여하는 횟수 등을 고려하면 그 같은 일이 벌어질 기회가 아주 많다고 볼 수 있다. 기회가 많으면 드문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아주 큰 수’의 법칙이다.

로또 복권에 100% 당첨되는 방법도 있다. 조합 가능한 모든 숫자의 복권을 다 사면 된다. 그와 유사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1992년 미국 버지니아 주의 로또 당첨금은 이월로 인해 2700만 달러로 불어났다. 모든 숫자 조합인 700만 장의 복권을 사는 데 드는 돈은 700만 달러. ‘국제로또펀드’라는 조직이 500만 장의 복권을 샀고, 당첨금을 받았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다’는 필연성의 법칙이다.

책은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 골라 결론을 도출하는 오류와 관련된 ‘선택의 법칙’, 데이터 해석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생기는 오류와 관련된 ‘충분함의 법칙’ 등도 소개한다.

개인적인 이야기 한 가지. 오래전 기자는 같은 대학이지만 별 관계없는 학과에 다녔던 한 여성과 첫 데이트를 한 바로 다음 날, 드넓은 캠퍼스에서 그 여성과 ‘우연히’ 마주쳤다. 당시에는 ‘아주 큰 수’의 법칙과 ‘선택의 법칙’을 몰랐으므로 ‘이게 운명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라고 생각했고, 바로 두 번째 데이트를 했던 두 사람은 지금 한지붕 아래 산다. 저자여, ‘알고 싶지 않은’ 학문적 진실도 있는 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