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복지부-보험-의료업계, 총선직후 협의체 구성
#. “탈모 방지 약이 필요하면 전립샘에 문제가 있다면서 ‘프로페시아’를 처방받고 실손보험금을 청구하세요.” 서울 강동구의 한 약국은 탈모로 고민하는 고객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조언한다. 똑같은 약이라도 탈모 방지 용도로 사면 한 달에 6만 원가량이 들지만 전립샘 비대증 치료용일 경우 건강보험 급여항목으로 분류돼 1만 원대로 약값이 줄어들고 이마저도 실손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다. 약국에선 “○○병원에서 이런 처방을 잘해준다”면서 특정 병원을 추천하기도 한다.
금융당국이 4·13총선 후 보건복지부, 보험업계, 의료계와 민관합동협의체(TF)를 구성해 실손보험 제도를 수술대에 올리기로 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7일 “의료계의 과잉진료와 보험소비자의 도덕적 해이가 맞물리며 정작 선의의 가입자들이 보험료 인상 폭탄을 맞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에 앞서 2011년에도 금융위와 복지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협의체’를 구성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회의만 여섯 차례 열었을 뿐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보험사나 의료기관 등 민간 부문은 협의체에 포함되지 않아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총선 직후 새로 구성될 TF에는 정부 부처뿐만 아니라 의료계, 보험업계 등 이해 관계가 있는 당사자들을 모두 불러 모을 계획이다.
TF는 우선 ‘감시 사각지대’에 있는 비급여 진료에 대한 관리 강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비급여 의료행위의 명칭(코드)을 통일하고 보험 심사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하는 방안 등이 집중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비급여 코드를 통일하면 실손보험금 청구 정보가 데이터베이스(DB)로 집적돼 과잉의료를 일삼는 ‘문제 병원’들을 걸러낼 수 있다. 자동차보험처럼 아예 심평원에 위탁심사를 맡기거나 한 해 비급여 진료 액수에 한도를 두자는 의견도 나온다. 아울러 소비자 편의를 위해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비급여 진료로 수익을 내는 의료계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TF를 총선 이후에 구성하려고 하는 것도 선거철에 의료업계가 단체행동에 나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는 “실손보험은 사실상 제2의 건강보험 역할을 하고 있다”며 “비급여 진료에 대한 관리감독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