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전화로 과외를 받듯 교재의 문제 하나하나를 붙잡고 풀이 방법을 요청하는 고객도 있고, 반 이상이나 푼 문제집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환불해 달라는 사람도 있다. 다짜고짜 영어 잘하는 사람 바꾸라는 역정을 내거나 자신의 의견이 맞고 교재가 틀렸다며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콘텐츠 개발자로 입사해 처음 이 업무를 하게 되는 사원들은 이 감정노동에 꽤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 업무를 물려줄 때 굉장히 미안해하면서도 동시에 기뻐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광고 로드중
한 번 걸려온 전화는 한 시간씩 지속되기 일쑤였고 업무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잦았다. 결국 지친 내가 “이러시면 곤란하다”며 정중히 거절을 했지만 그녀는 “여기가 아니면 물어볼 데가 없다”며 문의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뜸해지기 시작했고 이후 후배에게 그 고객의 소식을 물어도 특별한 얘기가 없어서 이제 영어 공부를 그만뒀나 보다 했다. 그 뒤 2년 만에 내 책상으로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나는 또 무슨 황당한 질문을 받을까 두려워 황급히 “현재 담당자에게 전화를 돌려드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아뇨, 아뇨, 예전에 제 전화 받아주시던 그분 맞죠? 오늘은 질문이 아니고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려고요”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미국에 있는 유명 대학의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며 그동안 자신이 그 영어사전으로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신이 나서 말했다. 영어를 독학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틈틈이 우리 회사로 전화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한참을 들떠 얘기하던 그녀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제가요, 이제 오프라 윈프리 쇼를 다 알아듣고요. 못 읽는 영어책도 없어요. 너무 감격스러워요.”
이제야 털어놓는 그녀의 사연은 참으로 기구했다. 그녀가 그 영어사전을 구입한 것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식당 일을 도우며 간신히 대학에 입학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졸업하지 못했고, 그래도 영어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애를 끓이다 무작정 사전을 첫 장부터 끝 장까지 공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광고 로드중
다시 한번 더 이런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지금 만드는 책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혹여나 마음이 풀어질 때는, 울음 섞인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릴 것이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