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돼지/김혜순 지음/256쪽·8000원/문학과지성사
2011년 수백만 마리의 돼지가 생매장됐다. 구제역 때문이었다. 김혜순 시인의 새 시집 ‘피어라 돼지’는 이 고통스러운 풍경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장시 ‘돼지라서 괜찮아’다. ‘훔치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죽이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재판도 없이/매질도 없이/구덩이로 파묻혀 들어가야 한다’ 2000년대 한국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는 이렇게 ‘죽이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했던’ 일이다.
김혜순 씨는 남성 중심의 문학사에 언어의 칼을 들이댄 시인이다. 독창적인 시어와 이미지로 무장한 그의 시편의 힘은 새 시집에서도 여전하다. 제목이 알리듯 ‘피어라 돼지’의 주인공은 ‘돼지’다. 한 편 한 편 돼지가 노래하는 듯한 그의 시를 뒤집으면 추한 인간사회가 펼쳐진다. ‘qqqq 돼지가 돼지가 아니라고 할 때 속으로 외치는 말/qqqq 엄마가 데려갈 때 뒤돌아보는 건 돼지라고 말하는 돼지가 하는 말/qqqq 무엇보다 제가 돼지인 줄 모르는 우리나라 돼지들의 교성’(‘돼지라서 괜찮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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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