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토지’ 일본어판 내는 김정출 이사장 인터뷰
“한국이 위대한 문화와 독자적 언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동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디에 살더라도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이를 위해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이 작품을 꼭 번역하고 싶었습니다.”
3일 일본 이바라키(茨城) 현 미노리병원에서 만난 김정출 미노리병원장 겸 청구학원츠쿠바 이사장(70)은 최근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완역을 위해 사재 5000만 엔(약 5억3000만 원)을 쾌척해 재일동포 사이에 화제가 됐다. 그는 “말과 문화를 소중히 간직하고 보급해야 민족혼을 지킬 수 있는데 재일동포 3, 4세가 우리말을 잃어버리고 점차 일본인이 되는 것이 아쉬웠다”며 이같이 말했다.
토지 완역본을 내는 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1980년대 후쿠다케서점(福武書店)에서 총 8권으로 나온 1부를 독파했으며 2004~2005년 방영된 52부작 드라마도 전부 봤다. 2011~2012년 청소년판 토지 총 6권을 번역 출판할 때는 직접 감수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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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장은 자신이 세운 청구츠쿠바 중고교에서도 매주 수요일 수업이 끝난 후 드라마 ‘토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주변 재일동포 중에는 도쿄대나 명문 의대를 졸업한 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말과 문화를 모르니 결국 마음속의 버팀목이 없어 힘들어하더라”며 민족문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년 전 학교를 세운 것은 대학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 초중고를 다녀야 했던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김 이사장은 “지금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열 조선학교는 문을 닫기 직전이고 도쿄 한국학교는 주재원 자녀 등 뉴커머 위주”라며 “재일동포 3,4세들이 민족교육과 입시교육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일본학교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시명문 민족학교’라는 꿈을 위해 30년 넘게 병원을 운영하며 번 돈을 모두 쏟아 부었다. 김 이사장은 “600명 정원에 아직 학생이 60명 남짓에 불과해 매년 큰 적자가 난다. 병원에서 더 열심히 일해 충당할 수밖에 없다”며 각오를 다졌다.
재학생은 재일동포, 한국인 유학생, 일본인 학생이 3분의 1씩이다.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한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온 한국인 유학생 중 일부가 흡연 등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퇴학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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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완역 비용을 낸 그지만 정작 토지 한국어판은 다 읽지 못했다. 대학시절 뒤늦게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고 인터뷰도 한국어로 진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사투리가 포함된 원고지 3만1000장의 대작을 읽는 것이 아직 무리라고 했다. 그는 “제대로 번역이 되면 원본과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천천히 읽고 싶다”며 웃었다.
이바라키=장원재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