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 전 역도 국가대표 선수 장미란재단 대표
국가대표 선수였던 나에게 4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올림픽은 아주 특별했다. 세 번의 올림픽 참가는 나에게 유·무형으로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나는 고작 22세의 어린 선수였다. 출전을 준비하며 ‘국내 대회와 크게 다를 건 없을 거야’ 했던 바람은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물거품이 되는 경험도 했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이 거대한 태풍처럼 몰려 왔던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성적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고 기록에 초점을 맞추어 차분히 경기에 임한 결과, 귀한 은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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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이상 내가 할 일은 세상에 없는 듯했으며 국민들도 행복해했고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기록 경신은 4년 뒤인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내 나름으로 철저한 준비를 했지만 나의 체력은 모든 이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멈추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3회 연속 메달 도전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과는 4위…. 메달을 따지 못했다.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메달을 딴 다른 어떤 선수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다.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깊은 기억으로 남은 경기였다.
꿈을 꾸고 이루지 못하면 좌절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았던 그때에,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했던 시간을 알아주고 격려해 준 국민들. 나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패배감에서 빠르게 회복했다. 그것은 후에 은퇴하는 나에게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을 주었고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장미란재단을 설립하여 국가대표 현역, 은퇴 선수들과 함께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장미운동회와 찾아가는 멘토링은 청소년들에게 체육활동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함께 뛰며 소통하는 시간이다. 또한 장미꽃이 비와 바람을 이겨내고 가시 사이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듯이 ‘장미꽃은 가시 사이에서 피어납니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성장기 아이들이 잘 인내하고 견디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조금의 힘을 보태고 있다.
체육인이 전문성을 갖고 사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보람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물론 열악한 복지 환경에 마음이 많이 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좌절보다는 체육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체육활동을 통해서 어려움 속에 있는 청소년들의 꿈과 기를 살려주고 싶다.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도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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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뜨거운 응원과 꾸준한 격려는 고갈된 기운도 되살아나게 한다. 선수들이 기운을 잃지 않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주면 좋겠다. 선수들도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리우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마음껏 축하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내가 받았던 그 사랑을 더 많은 선수들이 받았으면 좋겠다. 또 선수 가족, 친구, 동료들과도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2016년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장미란 전 역도 국가대표 선수 장미란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