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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김일성 만세’ ‘전두환 만세’… 대학가 때아닌 대자보 전쟁

입력 | 2015-12-14 03:00:00

시인 김수영作 ‘김일성…’ 게시물
훼손 이후 학생들간 찬반 논쟁… “표현자유 억압” “상식선 지켜야”




13일 고려대 게시판에 붙은 ‘김일성 만세’가 적힌 대자보.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대학가에 때아닌 ‘대자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지난달 30일 경희대 청운관에 붙은 대자보였다. 대자보에는 고 김수영 시인(1921∼1968)의 ‘김일성 만세’가 적혀 있었다.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라는 표현이 담긴 시다. 1960년 작품이지만 알려지지 않다가 2008년에야 공개됐다.

대자보를 쓴 김모 씨(23)는 “8월부터 교내에 딱딱한 대자보 대신 시를 게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 활동의 하나로 게시한 것일 뿐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자보가 학교 직원에 의해 철거되면서 오히려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1일 고려대 학생 12명은 교내 게시판에 같은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를 게시한 강모 씨 등은 경희대 대자보 철거 등을 언급하며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에 반박하는 학생들의 ‘패러디성’ 대자보가 잇달아 등장했다. 김일성 만세라는 시의 제목을 ‘전두환 만세’ 또는 ‘천황폐하 만세’ 등으로 바꾼 대자보들이다. 반박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은 “표현의 자유도 상식적인 선을 지켜야 한다” “독일 러시아에서는 하켄크로이츠(나치 문양)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사람들에겐 말할 권리도 들을 권리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일성 부자와 일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고려대 북한인권학회 ‘리베르타스’는 “6·25전쟁의 원흉이자 독재자인 김일성을 추앙하는 표현을 어찌 언론의 자유라고 할 수 있나? 이는 북한 주민들의 아픔과 상처에 칼질을 하는 것이다”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글을 쓴 정모 씨(23·경영학)는 “표현의 자유는 이해하지만 그 표현으로 인해 상처받을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일부 대자보가 뜯겨 나가고 다시 게시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재교 세종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김일성의 업적을 얘기하면서 만세를 외쳤다면 별개의 차원이겠지만, 표현의 자유 자체만 놓고 대학생들이 이처럼 논쟁을 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