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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의 정치해부학]문재인은 어떤 법치국가를 원하는가

입력 | 2015-12-04 03:00:00


박성원 논설위원

“요즘 법치주의에 대해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이 법을 지켜야 하는 게 아니라 국가권력이 법을 지켜야 하는 게 진정한 법치주의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009년 9월 ‘노무현 시민주권학교’ 강연에서 한 말이다.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인데, 이명박 정부 들어 어렵게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법치주의는 권력을 가진 특정인의 뜻이 아니라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제정된 법률에 따라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결정돼야 한다는 근대국가의 운영원리다. 하지만 그 적용 대상은 국가권력만이 아니라 사회계약에 의해 주권을 국가에 맡긴 국민도 포함된다는 게 근대입헌주의 정신이다.


그때그때 다른 文의 법치

문 대표는 지난달 14일 광화문 도심의 불법·폭력시위에는 침묵한 채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국민에게 전쟁을 선포하더니 생존권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살인적 폭력진압을 자행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대통령민정수석으로서 “집회를 하는 사람들도 질서 유지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했던 문 대표의 법치주의는 그때그때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박 대통령이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들이 복면 뒤에 숨어 야만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비유하며 복면시위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하자 문 대표는 “국민을 테러 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발끈했다.

복면을 쓰고 불법·폭력시위를 벌이는 행위를 처벌하자는 얘기를 ‘국민=테러리스트’로 등치시키는 것을 단순히 문자 해독의 실패로만 볼 수 있을까. 문 대표는 폭력시위의 재연이 우려되는 5일 2차 민중총궐기대회에 소속 의원들을 내보내 인간띠를 만들겠다고 한다.

문 대표는 국가 공권력을 토머스 홉스의 저서이자 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괴물 ‘리바이어던’처럼 통제받지 않는 거대한 힘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8월 대법원에서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해 유죄확정 판결을 받았을 때도 문 대표는 국민 앞에 사과하기는커녕 “법원까지 정치화됐다”고 비난하며 모금운동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비주류들로부터 사퇴 요구가 비등하자 당헌·당규에 의해 선출된 최고위원회의를 깡그리 무시한 채 당권을 안철수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등 ‘대권 주자 3인방’과 함께 나누겠다는 ‘문-안-박 구상’을 내놓았다. 대표로서 지도력의 한계를 느낀다면 사퇴하고 전당대회를 열거나 비상대책위를 통해 임시지도체제를 구성하는 것이 당헌·당규의 절차다. 당 대표라 해서 당헌·당규에도 없는 지도체제를 지어내고 인치(人治)를 통해 당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건 정당민주주의는 물론이고 법치주의 철학의 빈곤을 보여준다.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 맞나

의원회관에 카드 단말기를 갖다놓고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책 장사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노영민 의원, 지역구 소재 대기업 사장에게 전화해 딸의 변호사 채용을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은 윤후덕 의원, 졸업시험에 낙제한 아들 구제를 위해 로스쿨에 압력을 넣었다는 구설에 오른 신기남 의원이 모두 문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이다.

법치주의를 그때그때 편의주의로 해석하는 문 대표의 고무줄 잣대와 무관하다 말할 수 있을까? 이런 게 평생 반칙과 특권에 맞서 싸우며 운명하는 날까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어울리는 것일까? 취임 300일을 맞은 문 대표가 자신만의 법치국가에 갇혀있는 스스로를 한 번쯤 되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