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원 정치부 차장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이 ‘야당결재법’이 되는 것이 못내 서운했나 보다. 김무성 대표가 공개적으로 ‘연계’전략을 언급하면서 예산안 장바구니에는 여야가 경쟁적으로 던져 넣은 법안이 16개에 이르렀다. 예산안과 쟁점법안 처리의 기준이 ‘정치적 이익균형’ 맞추기라는 야당의 논리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헌법 46조 2항에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가 사상 최초로 40%를 넘게 되는데도 여야는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욕 좀 먹더라도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는 심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광고 로드중
법정처리시한을 훌쩍 넘긴 선거구 획정 작업에도 절박성은 찾아볼 수 없다. 기득권을 가진 현역 의원들끼리 이심전심하는 격이다. 위헌 요소가 농후한 1조 원 규모의 농어촌상생협력기금도 거리낌 없이 의기투합하는 정치권이니 법률 위반쯤이야…. 어차피 17, 18대 선배 국회의원들도 지키지 않은 공약(空約) 아니었던가.
편치 않은 몸으로 프랑스와 체코를 누비며 순방외교를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만이 이해된다. 지난달 24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7박 10일간의 순방외교를 마친 뒤 “정치권이 할 일은 안 하고 ‘립 서비스’만 한다”며 위선과 직무유기를 지적한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옳았다는 것을 국회 스스로 증명한 꼴 아닌가.
내년이면 집권 4년 차에 접어드는 박 대통령이 목이 터져라 개혁을 외쳐본들 새롭게 들어설 국회가 얼마나 달라질지 의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할 경우 김 대표를 포함한 차기 대선주자군의 경쟁 속에 청와대의 어젠다 세팅력은 현저히 저하할 수밖에 없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노리는 야당 역시 박 대통령과 각 세우기를 통해 정권심판 여론몰이에 나설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박 대통령은 점점 외로워 보인다. 사심(私心) 없이 밤잠 안 자고 국정에 매진하고 있지만 주변은 오히려 허전해진다. 논공행상에서 배제된 캠프 인사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원로자문그룹인 7인회 멤버인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19대 총선 때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낙마한 것도 박 대통령의 고립을 더 심화시킬 악재가 될 것 같다.
광고 로드중
다음 국회는 19대가 걸어온 길과 정반대로만 하면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사실을 아프게 느껴야 한다. 당장 국회를 해산하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이보다 더한 ‘디스’가 어디 있겠나. 민초의 분노를 아는지 모르는지 ‘금배지’들은 오늘도 자기 방에 카드단말기를 설치하고 혈세를 긋는다. 깨진 유리창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태원 정치부 차장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