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유권자 등 돌리고 당내선 위기의 아우성 고조 진퇴양난의 文대표에게 朴대통령이 던진 ‘국정화 미끼’ 잘못 물면 큰 내상 입거나 공멸 역사전쟁은 시민사회에 맡기고 變則通의 지혜와 용기로 당 체질 개혁에 진력해야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그러나 현실은 꽉 막힌 상태다. 앞으로 나아가기도 물러서기도 어렵다. 가시덤불에 싸여 있다. 정부·여당은 문재인 대표와 총선에서 싸우기를 원한다. 그를 도우려는 기획마저 느껴진다. 그만큼 제1야당에서는 위기의 아우성이 높다. 호남의 유권자는 이미 등을 돌렸다.
왜 이리 되었는가? 문재인 대표는 당의 결함을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한다. 18대 대선 후에 그랬고 지난 10·28 재·보궐선거 후에도 그렇다. 책임감의 표현이 없다. 사즉생(死則生) 또는 변즉통(變則通)의 결기나 각오도 없다. 자신은 죽을 생각이 전혀 없다. 변화의 의지도 약하다. 혁신의 대상은 오직 밖에 있고 자신은 당의 패권 유지에 집착하는 것 같다. 18대 대선 때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지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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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출발할 것인가? 세월호 재난의 엄격한 검증이 출발점이다. 작년 4월 이후 국민의 마음속에 엄청난 변화 욕망과 통합 에너지가 분출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적 공방과 오염으로 퇴색한 측면이 있다. 문재인 대표는 자신의 단견과 새정치연합의 책임을 성찰하여 깔끔히 공개하는 것이 좋다.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선언하면 더욱 좋다.
조선조 왕조차도 사관들의 자존심을 짓밟으면서 통치자의 판단을 강요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정신문화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그만큼 저항이 강하다. 수많은 역사학자, 연구자, 지식인, 시민들이 정부 결정에 분노하고 있다. 그야말로 ‘역사재난’이다. 여권이 합리적 보수로부터 이토록 멀리 벗어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잘못 개입하면 변화의 에너지를 놓친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기 쉽다. 운동권 체질이 강한 새정치연합은 특히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대표는 과욕을 버리고 시민사회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옹호하기 바란다. 정부당국의 부당한 억압에는 분연히 맞서야 한다. 그러나 역사전쟁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열쇠는 역사학계의 양식과 지식생산의 자율성에 있다. 우리의 희망은 깨어 있는 시민에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 없는 우리의 잠재력을 키워 정치를 일신할 때다. 시민과 차분하게 소통하는 ‘와글와글’ 공론장 수로를 넓게 열자. 의원 128명의 제1야당이 하려면 길과 방법은 많다.
만일 조직된 힘으로 옛날처럼 싸우면 국민은 곧 지친다. 도망간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에 전면전을 유인하고 있지만 문재인 대표가 해야 할 일은 상투적인 시위가 아니라 열린 토론장이다. 몸싸움이 아니라 두뇌싸움이 요구된다. 와글와글 공론장 수로를 통해 시민연대를 전파하고 협력을 구해야 한다. 민주당 60년의 토론문화를 새롭게 계승해야 한다. 그러면 고질적인 당의 패권 행태도 힘을 잃는다. 낡은 권위주의, 획일주의로 퇴행한 집권 여당과는 확실히 차별화된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거부하면서도 역사 서술의 개선점을 시민과 함께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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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