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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배의 神品名詩]경회루(慶會樓)

입력 | 2015-10-28 03:00:00


경복궁 경회루

경회루(慶會樓) ―성찬경(1930∼2013)

자금성 보고 크다고 놀라는 이는 촌놈이다.
근정전 보니 위엄 있고 포근하다.
바로 옆 물 위에 솟은 경회루.
아아, 이거야 말로 건축미의 극치다.
명상하는 미(美)랄까. 잠시 쉬는 꿈이랄까.
무슨 수사(修辭)로도 따르지 못한다.
높고 경사스런 만남이다.
군신이 더불어 마음 열고 담소한다.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 지수화풍 4원소
주역(周易)의 원리까지 춤사위를 맞춘다.
익은 술내에 실려 궁중 풍악 퍼진다.
도연한 소나무도 미풍에 나부낀다.


내 나라가 처음 선 날은 하늘도 새로 열렸다 했다. 그날을 기려 개천절이라 이름했다. 지금은 서기로만 쓰다 보니 그저 반만년이라고만 일러오는 우리 역사의 나이를 잊고 살지만 나의 할아버지는 축문을 지을 때 반드시 단군기원을 연호로 쓰셨다.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통감’ 등에 따르면 올해는 나라가 선 지 4348돌을 맞는 해이다.

나라는 백성의 집이다. 백성들을 고르게 밥 먹이고 옷 입히고 잠자리를 주고 일터를 주며 더불어 복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게 하는 집이다. 그 나라도 집이 있어야 한다. 보다 평안하기 위해서는 국격을 높이고 만민이 우러르는 다락을 지어야 한다.

경복궁 경회루(국보 224호)는 처음 경복궁을 지을 때는 규모가 작았다. 조선왕조 창건에 앞장섰던 태종이 나라의 경사 때 큰 잔치를 열고 신하들이 새해 세배를 올리며 국가 의식의 거행과 외국의 사신들을 맞이하는 다목적 궁실의 사랑채로 쓰기 위해 연못을 넓히고 규모와 위엄을 더하여 중건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경회루가 소실되어 돌기둥만 남은 빈터가 되었다. 1867년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나서서 왕실의 권위와 상징을 높이기 위해 경복궁이며 경회루를 중건하면서 국고가 바닥나자 원납전(願納錢)이란 이름으로 지방 졸부들에게 강제로 돈을 거두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24절기를 뜻하는 24개의 기둥과 열두 달의 숫자인 12칸, 그리고 동북쪽 모서리 칸이 정월이 되어 시계방향으로 하늘·땅·사람(天地人) 삼재(三才)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나라 안에서는 단일 평면으로 가장 큰 집이며 처마에는 취두(鷲頭)와 용두(龍頭), 기둥에는 십이지상, 축대 둘레에는 하엽동자(荷葉童子) 등이 있어 조선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이자 호화 장식물이다. 시인은 “자금성 보고 놀라는 이는 촌놈이다/아아, 이거야 말로 건축미의 극치다” 하고 찬탄을 금치 못한다.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