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책/폴 서루 지음/이용현 옮김/511쪽·1만5000원/책읽는수요일
이 책은 특정 여행지 정보를 담거나, 여행지 속 역사 문화 감성을 담은 여행 에세이와는 다르다. ‘인간이 왜 여행을 하고, 어디로 향하는지’란 근원적 질문부터 여행의 기쁨과 고통을 통해 깨닫는 삶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행 문학의 대가로 통하는 미국 소설가 폴 서루. 그는 50년간 코스타리카와 그린란드, 앙골라, 뉴브리튼 섬 등 세계를 누비며 여행에 관한 글을 써 왔다. 구절구절 여행 속에서 느낀 그의 묵직한 깨달음이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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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도 있다. “여행은 자학이며 슬픈 기쁨이다.” “어떤 곳이 낙원이란 명성을 얻게 되면 이내 지옥으로 바뀐다는 사실은 공리에 가깝다.”
책을 읽다 보면 여행철학이란 단어가 떠오를 정도. 저자는 최고의 여행이 될 조건도 제시한다. 우선 여행은 ‘혼자’ 가야 한다는 것이다. “고독은 집에 머무는 자에겐 시련일지 모르지만 여행하는 자에게는 꼭 필요한 조건이다. 동반자, 부인, 여자친구와 함께 여행하는 것은 둥근 유리 천장 안에 있는 새들처럼 보인다.”
그는 또 비행기보다는 기차 여행을 권한다. 비행기 여행이 ‘갑옷을 입은 연인’이라면 기차는 “떠들썩한 술잔치, 카드놀이, 음모, 숙면, 러시아 단편소설처럼 구성된 이방인들의 독백. 심지어 뛰어내리려는 충동조차 가능하다”고 이 책은 예찬한다.
그렇다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여행 안내서를 활용해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들을 확인하라. 그런 뒤 그 반대 방향으로 가라” “영국에서는 토요일 축구경기 후 불량배들을 조심하라” “낯선 곳에서 위협을 느낀다면 ‘쏘지 마세요. 나는 기자입니다’라고 말해라. 다만 안전은 보장 못한다” 등 위트 넘치는 조언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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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 책 속에서 수백, 아니 수천 번 나온 여행이란 단어보다는 ‘인생’이란 단어가 머리에 남는다. 여행을 사유 대상으로 격상시키면 결국 인생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리라.
이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유쾌한 문장에서 폴 서루를 따를 이가 없다”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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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