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선택을 요구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연일 엉뚱한 변설(辯舌)을 쏟아 내고 있다. 그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미정상회담 뒤의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남중국해와 관련한 한국의 입장을 물은 것 아니냐는 국회의 질문에 “남중국해의 ‘남’자도 나오지 않았다. 일부 언론이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제 외교부 대변인도 오바마 대통령이 남중국해 문제를 겨냥했다는 것은 “언론의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국민을 속이고, 언론을 바보로 만들겠다는 행태다.
오바마 대통령이 남중국해의 ‘남’자도 거론하지 않은 것은 맞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요청한 것은 우리는 중국이 국제 규범과 법을 준수하기를 원하는 것”이라며 “만약 중국이 그런 면에서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국제 규범 위반 문제는 남중국해 분쟁 말고도 사이버테러,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선포, 인권 탄압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중국 간에 가장 뜨거운 현안이 남중국해 문제이고,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중국의 ‘신형대국관계’가 맞부딪친 지역이 남중국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요구했음을 윤 장관이 모를 리 없다.
지금 중국은 전략 요충지인 남중국해에서 군사기지 건설을 위한 인공섬을 조성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대립하고 있다. 오바마는 지난달 방미(訪美) 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면전에서 “미국은 국제법이 허락하는 어디에서도 항해하고 비행하며 작전을 벌일 것”이라며 군사작전을 시사했다. 한미 정상회담 전날인 15일 중국 관영 환추시보가 사설에서 “미국 군함이 이 지역을 침범할 경우 중국은 반드시 반격해 제압할 것”이라고 주장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윤 장관이 남중국해 문제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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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장관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으로 대통령에게도 ‘외교 축복론’을 펼쳤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략적 이해가 다른 미중 간에 실제로 충돌이 벌어질 경우 한국은 절체절명의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른다. 외교부가 정교한 국가 전략을 마련하기는커녕 대통령을 속이고 언론을 비난만 하다 나라가 위기에 빠질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