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머의 힘/버지니아 포스트렐 지음/이순희 옮김/480쪽·2만5000원·열린책들
사진작가 조지 허렐이 찍은 이 사진은 그레이스 켈리의 품위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화려함과 섹시함은 글래머의 필수 조건이지만 이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뭔가 감추고 있는 느낌을 줘야 한다. 열린책들 제공
정치 포스터, 군인 모집 광고에도 이 기법이 쓰인다. 캄캄한 전투기 안에서 광활한 상공으로 뛰어내리는 군인, 항공모함 갑판에서 멋진 자태로 이륙하는 전투기가 광고에 등장한다. 이런 장면들은 중차대한 의미를 갖고 활동이 펼쳐지는 세계로 직접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한다.
그럼 글래머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품위는 글래머의 핵심 중 하나다. 사진작가 조지 허렐이 찍은 영화배우이자 모나코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의 사진이 대표적이다. 바닷물에서 몸을 일으키며 어깨가 드러나는 이 사진은 자연스럽게 촬영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다. 촬영 각도를 신경 써 켈리의 각진 턱이 드러나지 않게 했고, 물에 지워지지 않는 화장을 했다.
신비감은 글래머가 일으키는 중요한 인지적 특징이다. 신비감을 담은 영화로는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2011년)가 꼽힌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길 팬더(오언 윌슨)는 밤거리를 헤매다가 어떤 마법에 이끌려 1920년대 파리로 향한다. 여기서 피카소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어울리는 환상을 경험한다. 앨런 감독은 영화의 주제에 대해 “사람은 누가 지금 자신의 현실에 머무르는 걸 따분한 일로 여긴다. 하지만 시대를 옮겨 늘 동경하던 것이 현실이 되면 그것은 다시 따분한 현실로 둔갑한다”고 말했다. 신비감이 없으면 글래머는 존재할 수 없다.
저자는 오늘날 서양의 글래머가 만들어진 때는 1930년대라고 본다. 당시 영화들이 도입한 스타일과 이미지는 현대의 특징적인 시각적 요소가 됐다. 조명의 극적 효과가 극대화된 여배우들의 초상, 멀리서 찍은 뉴욕 스카이라인 사진, 고급스러운 펜트하우스 등이 그것이다. 이 시대에 뉴욕은 파리를 대신해 글래머를 내뿜는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의 글래머는 이전과는 달라졌다. 루이뷔통의 한 핸드백 광고 사진 속에서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캄보디아 습지를 배경으로 낡은 배에 앉아 있다. 손질하지 않은 머리는 미풍을 맞아 부풀어 있다. 사색과 고독을 만끽하는 모습이다. 현대의 부유한 서구인들은 속세에 대한 욕망 대신 아름다운 정적을, 과시적 소비 욕망 대신 기품 넘치는 소박함을 원한다.
저자는 글래머를 통해 인간 심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관심과 존경을 원하고, 부와 권력을 얻기를 원한다.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받기를 원하고, 성적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글래머를 통해 대중과 자신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