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영 경제부 차장
특히 브라질에서는 퇴임을 앞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인기가 대단했다. 브라질에서 만난 사람들은 “룰라는 빈곤에서 허덕이던 우리를 세계 8대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사실 강성 노조 지도자 출신이던 그가 2003년 취임했을 때만 해도 외채 디폴트 선언, 기간산업 국유화 등 급진 좌파적 정책을 펼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재정 긴축, 외국인투자 세율 인하, 자본시장 개방 등 실용적 노선을 추구해 연평균 4%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때마침 급등하는 국제 원자재 가격도 그를 도왔다. 그가 퇴임하던 해인 2010년 브라질은 20년 만의 최고 수준인 7.6% 성장률을 보였다. 외환보유액은 10배로 늘었고 물가상승률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브라질 빈곤층의 비율이 30%에서 19%로 낮아지는 대신에 중산층의 비율은 42%에서 53%로 상승했다.
그러던 브라질 경제가 5년이 지나 다시 곤두박질치고 있다. 원자재 가격의 급락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경기 침체에서 원인을 찾는 분석가가 많지만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무능과 무분별한 경제 운용의 탓이 더 크다. 수출 여건이 나빠지자 호세프는 중앙은행에 압력을 넣어 금리를 낮췄다. 소비자들이 대출을 받아 소비에 나서도록 유도한다는 취지였다. 그 결과 지금 중산층은 빚에 허덕이고 있다. 휘발유 가격과 전기요금을 통제해 에너지 공기업들은 경영 위기에 빠졌다. 대기업들이 저리로 대출을 받아 투자에 나서도록 하기 위해 국고를 동원했다.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재정 적자가 쌓이자 이를 숨기기 위해 국책은행들의 자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모든 게 작년 말 대통령선거에서 재선되기 위해서였다.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올해 성장률은 ―3%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물가는 두 자릿수로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지금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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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을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정치 지도자의 비전이 한 나라의 국운을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룰라의 브라질과 호세프의 브라질, 우리는 어느 쪽과 닮았나. 우리에게 이 답답한 경제상황에 돌파구를 열어 국운을 바꿀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지도자들이 과연 있는가. 자문해 볼수록 가슴이 답답해지는 질문이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