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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유영]책 읽지 않는 시대 ‘인디서점’이 사는 법

입력 | 2015-10-02 03:00:00


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지난달 자정 무렵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작은 책방. ‘그렇다면 정상입니다’라는 책을 펴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하지현 씨가 독자들과 만났다. 그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이 비정상일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사는 사람을 위해 책을 썼다고 했다. 여기 모인 20여 명은 하 씨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사는 법을 모색했다. 이 서점이 ‘심야치유 서점’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이곳은 ‘북바이북’이라는 서점. 저자와의 만남을 매달 서너 차례 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매개로 모여 삶을 나눈다. 드로잉 수업이나 재즈 음악회도 열린다. 테이블은 서너 개가 전부. 커피나 맥주도 판다. 퇴근길에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단골들은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이렇듯 특색 있는 작은 서점이 최근 선전하고 있다. 일명 ‘인디 서점’이다. 한때 동네 서점들이 온라인·대형 서점에 밀려 문을 닫았지만, 최근 인디 서점이 서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방식은 다양하다. ‘퇴근길 책한잔’(서울 염리동)에서는 고전을 읽는 ‘고물모임’(고전에 물드는 독서대화클럽)이 진행된다. ‘프루스트의 서재’(서울 금호동)는 책 낭독회를 열고 ‘스토리지북앤필름’(서울 용산동)은 독립 출판물을 판다. ‘일단멈춤’(서울 염리동)은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가이드북 판매를 지양하고 손님들에게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를 가르친다.

책과 함께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북스테이’도 등장했다. 가정집을 서점으로 만든 ‘숲속작은책방’(충북 괴산군) 등 6곳은 ‘책이 있는 집에서 하룻밤, 북스테이’를 결성했다. 인디 서점 20여 곳은 이달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각 서점의 책을 전시한다.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은 9.2권(2013년). 한 달간 책 한 권도 채 읽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 책은 여느 상품과 달리 읽고 만지고 듣는 등의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 가까운 곳에 있을수록, 다양한 곳이 많을수록 책을 접할 토대도 두터워진다. 이런 점에서 인디 서점은 대형·온라인 서점이 채워주지 못하는 ‘문화의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해외 유수의 도시에서 인디 서점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미국 뉴욕에서는 매년 ‘인디 서점 주간’이라는 행사가 열리며 ‘스트랜드 서점’이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80여 년째 같은 자리에 있다. 책 낭독회와 저자와의 만남이 꾸준히 열리고 희귀·중고서적을 판매해 늘 손님들로 부산하다. 서점 로고를 새긴 머그와 가방 등의 수익이 전체의 30%일 정도로 뉴욕 시민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됐다.

국내 인디 서점은 전국에 60여 곳. 아쉽게도 대부분 임차료와 인건비를 간신히 건지는 수준이다. 하지만 점점 세분되는 독자 취향과 책의 독특한 물성에 주목한다면 이름 없이 사라져간 동네 책방의 전철을 밟지 않고 ‘제2의 스트랜드’로 진화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국내 인디 서점의 ‘유쾌한 실험’은 이제 시작이다.

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