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언더우드 발자취 좇아 뉴저지 등 美 동부 탐방
헨리 아펜젤러
배가 급격히 침몰했고 한 조선인 소녀가 물에 빠졌다. 모두가 망설이는 찰나에 한 미국인이 물에 뛰어내려 소녀를 건져냈다. 이후 자신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광고 로드중
호러스 언더우드
코리아(Where, dear, Korea)?” 그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숨을 거뒀다. 》
광고 로드중
전자는 헨리 아펜젤러(1858∼1902), 후자는 호러스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다. 130년 전 한 배에 몸을 싣고 조선에 도착한 이들은 자신들을 낮추고 희생하는 삶으로 국내 개신교 영성의 뿌리가 됐다.
최근 세속화와 분열로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교회에서 이들 선교사의 영성을 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7∼9일 새에덴교회의 협조로 뉴욕과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주에 위치한 두 선교사의 발자취를 탐방했다.
7일 오전 미국 동북부 뉴저지 주 노스버겐. 마을 언덕 위로 그로브 개혁교회가 보였다. 이곳은 1872년 영국 런던에서 이주해온 언더우드가 다니던 교회다. 교회 옆 신자 묘지에는 언더우드 가족 묘역이 보였다. 그의 유해가 1999년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이전됐음에도 그의 묘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언더우드가 다닌 미국 뉴저지 주 뉴브런즈윅 신학교 도서관 2층의 언더우드 흉상과 관련 서적(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아펜젤러가 신학을 공부한 드루대 신학부 건물이다. 이들은 학창시절부터 지역 사회에 봉사하며 선교사를 꿈꿨다. 노스버겐·뉴브런즈윅=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광고 로드중
1867년 세워진 이 학교의 고문서도서관에는 아펜젤러가 1881년 대학 입학 당시 기록한 자기소개서를 비롯해 한국에서 학교에 보낸 편지가 보관됐다. 그는 신앙을 전파하는 선교사이자 자신이 속했던 신학교를 비롯한 미국 내 개신교 공동체에 조선을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도서관 책임자 크리스토퍼 앤더슨 씨도 “아펜젤러가 학교에 보낸 선교 편지와 기록들이 지역 언론에 보도됐고, 이를 통해 지역민들이 조선에 대해 잘 알게 됐다”고 했다.
8일 방문한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제일감리교회에는 아펜젤러 추모 예배당이 별도로 설치돼 있었다. 1802년에 창립된 이 교회는 아펜젤러가 한국 선교 중 안식년 때 귀국해 예배를 보던 곳. 매년 봄 아펜젤러 추모 행사도 열린다.
필라델피아 내 미국장로교역사연구소에는 1893년 언더우드가 릴리아스 호턴 여사와 첫째 외아들 호턴 언더우드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이 주요 자료로 보관돼 있다.
미국 동부 곳곳에 남겨진 두 선교사의 흔적에서는 머나먼 이국땅 조선에서 사랑과 희생을 실천한 숨결이 느껴졌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담임목사는 “두 선교사의 열정과 사랑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며 “교회의 헌신과 봉사, 살신성인, 언행일치의 실행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노스버겐·뉴브런즈윅=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