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정치부장
한중 정상회담 언론보도문에는 ‘중국 측은 장래에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통일의 주체는 남북을 아우르는 ‘한민족’이지, 대한민국이 아니다.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중국이 (한반도) 정세 긴장을 초래하는 그 어떤 행위에도 반대한다’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방점이 찍혔다고 해석하고 싶겠지만 남북한 모두에 보내는 메시지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두 나라의 온도 차가 느껴진다.
전직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최근 중국 핵심 인사들에게서 들은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북-중 관계가 나빠졌다고 해도 ‘남북한 현상 유지’라는 중국의 사활적 이익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통일 외교의 핵심은 결국 주변 열강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주변 열강의 ‘동의’는 핵심적 변수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특정 국가의 패권이 두드러지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19세기 말∼20세기 러시아나 일본 제국주의가 그랬듯이 지금은 중국이 표적이 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전승절 행사에서 “중국은 앞으로 강해져도 패권주의나 팽창주의를 모색 안 한다”고 선언한 것도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미국 내부에서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놓고 “중국에 너무 치우친 것 아니냐”는 반감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한미동맹은 만사형통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서로가 동맹의 실익을 공유해야 한다.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이 중요한 이유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한반도를 에워싼 역학관계를 ‘한중 프레임과 미일 프레임’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간다면 우리의 균형 외교는 자칫 ‘왕따 외교’로 전락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동북아 균형자론’이 얼마나 허망한 실체를 보였는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처음으로 독일 통일을 이룬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신(神)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라고 갈파했다. 박 대통령은 이제 통일 외교의 시동을 걸었다. 통일 외교라는 ‘신의 옷자락’을 붙잡는 일은 “통일 한국은 당신 국가에도 이익이 된다”는 공감대에서 시작한다. 이어 주변 열강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교한 협상이 뒤따라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