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주택 세입자 보호 허술
전세난에 아파트를 떠나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찾는 세입자가 늘며 소형주택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신축 빌라들이 들어서고 있는 서울 송파구의 다세대주택가.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장판을 들춰본 그는 깜짝 놀랐다. 납작한 철판 아래에서 물이 분수처럼 솟아올랐고, 철판 밑에는 도로에서나 볼 수 있는 맨홀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전세금 5000만 원을 주고 맨홀 위에 지어진 불법 건축물에서 잠을 잤다고 생각하니 너무 분하다. 집주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 떼고 손해배상도 거부하고 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세난에 지친 서민들이 몰려드는 다세대·다가구 등 소형주택이 서민주거 보호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7월 연립·다세대, 단독·다가구주택 등 소형주택의 전월세 거래량은 6만7791건으로 전체 주택 전월세 거래량의 55%를 차지했다. 전월세 수요가 늘고 임대료가 상승하자 임대사업자들이 급하게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지어 세를 놓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부실하게 지어진 주택으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다.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에 따르면 주택 하자 등으로 인한 분쟁조정 건수는 2013년 12건에서 2014년 104건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1∼6월)에는 56건이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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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대·다가구주택의 전세금이 아파트 수준으로 올라 ‘깡통주택’에 대한 불안도 크다.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 세입자들이 집단으로 보증금을 떼이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다가구주택에 사는 세입자 30여 명은 최근 1인당 최대 8000만 원의 보증금을 날렸다.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챙긴 집주인이 잠적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건물에는 근저당까지 잡혀 있어 세입자들은 꼼짝없이 보증금의 일부를 떼일 상황이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도 보증금을 되찾기 쉽지 않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7월 평균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아파트가 90.3%였던 반면 연립·다세대주택과 단독·다가구주택은 각각 77.2%, 75.7%에 그쳤다.
다가구주택의 세입자가 또 다른 세입자에게 단기간 세를 내주는 전대(轉貸) 피해도 발생한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집주인의 동의 없이 전대로 세를 살다가 집주인에게 들켜 쫓겨날 수 있다”며 “1차 임차인이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회수하고 사라져 피해를 보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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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achim@donga.com·천호성 기자
노덕호 인턴기자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세무회계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