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들 “우리도 대박” 모시기 경쟁
요즘 출판계에서는 영화 ‘암살’의 최동훈 감독이 ‘표적’이다. ‘도둑들’에 이어 ‘암살’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자 그의 책을 내려는 출판사가 많아진 것. A출판사에서는 지난해부터 수차례 출간 제안을 했지만 최 감독은 “‘타짜’(상업영화란 뜻)를 찍는 감독인데, 굳이…”라며 고사했다고 한다. 작가주의 감독도 아닌데 책을 통해 따로 할 얘기가 없다는 의미다.
‘암살’ ‘베테랑’ 등 한국영화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영화감독을 저자로 확보하려는 출판사들이 늘고 있다. 출판계에 따르면 우선 영화감독들은 집필 원고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다. 양희정 민음사 편집부장은 “국내 감독들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등 글과 친하다. 스토리도 잘 구상한다”고 말했다. 감독들은 대부분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어 일정 이상 판매가 보장된다는 장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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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 쓴 ‘류승완의 본색’ 역시 섭외부터 제작까지 2년이 걸렸다. 그의 문체는 속칭 ‘썰’을 여유 있게 풀어내는 만연체다. ‘달콤한 인생’의 김지운 감독은 친구인 박찬욱 감독이 ‘정말 잘 쓴다’며 출판사에 섭외해준 케이스. 하지만 김 감독은 출판사가 수정 원고를 보내도 한 달 이상 연락이 두절되고, 원고 분실 사고도 자주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저는 제가 아닌데요.” ‘괴물’의 봉준호 감독이 출판 제의에 답한 말이다. 연세대 재학 시절에 교내신문 ‘연세춘추’에 쓴 만화를 모아 책으로 내자고 권하자 봉 감독은 “대학생 봉준호와 지금 나는 다르다. 지금 내면 부끄럽다”며 반대했다. 이후 2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마더 이야기’가 나왔다. ‘비열한 거리’의 유하 감독은 1980년대 이미 시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홍상수 감독도 출판 섭외 대상 상위권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영화 시나리오조차 촬영 당일 ‘쪽 대본’으로 나눠주는 스타일이다. 책 한 권을 진득하게 쓰기 어려운 성격이라 출판 제안을 계속 거절했다고 한다.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감독은 출판사 요청에 대응을 느리게 하는 편이라 책을 내기 어려운 감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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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영화제에서 수차례 상을 탄 김기덕 감독은 한때 주요 섭외 대상이었다. 하지만 자전적 다큐멘터리 ‘아리랑’을 2011년 발표하자 출판계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더이상 책으로 보여줄 것이 없지 않냐”는 분위기가 퍼졌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