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7월 30일
할리우드 기대작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이 현재 흥행 중인 한국영화 ‘암살’과 정면충돌한다. 시리즈물에 대한 팬들의 열광은 여전해 보인다.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외화와 한국영화는 오랜 세월 대적해왔다. 아마도 영화라는 매체가 살아 숨쉬는 한 이 같은 대치는 영원할 터이다.
한때 한국영화를 ‘배척’한 관객이 수없이 많은 시절도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 속 관능의 여인을 보며 침을 삼켰고, 스크린 속 그 화려하고도 거대한 도시들에 짓눌린 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기도 했다. 힘겹고 어두우며 질곡과도 같은 신산한 삶을 위로한 진한 욕망과 환상의 꿀이었다.
1994년 오늘 개봉한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우린 그때 마릴린 몬로의 치맛속이 궁금했다”는 카피를 내걸었다. 그 “치맛속이 궁금”하지 않았던 사내들은 또 있었을까. 영화는 “헐리웃 영화의 은밀한 구석구석을 염탐”하기 위해 “나팔바지 차림으로 책가방 한귀퉁이엔 미국영화잡지 ‘스크린’을 뽐나게 꽂고는 씩씩하게 극장에 잠입한 아이들”, 바로 그 흔한 ‘헐리우드 키드’들의 이야기다.
연출자 정지영 감독은 할리우드 직배영화에 반대하는 영화계 시위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리우드가 힘겨운 시절을 겪어내던 ‘헐리우드 키드’들을 유혹한 그 달콤한 꿀이 결국 그 정서를 넘어 현실을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을 그린 셈이다.
실제로 당시 이 영화는 ‘고인돌가족’에 밀려 한 차례 개봉을 연기했다. 앞서 ‘백한번째 프로포즈’는 ‘쥬라기공원’에 밀려 조기종영했다. ‘스피드’ ‘라이언 킹’, ‘울프’, ‘트루 라이즈’ 등 외화가 극장 간판을 장악했다. 제작자인 당시 영화세상 안동규 대표는 부모의 집을 담보로 후반작업비를 마련해야 했지만 관객은 제대로 호응하지 않았다. 한국영화가 15.6%의 점유율(1987년∼1993년, 영화사 신씨네 집계)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