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한국인 첫 바이올린 부문 1위, 임지영 결선까지 가면 실력은 다 비슷… 자신감-집중력-컨디션이 승부갈라 8월까지 빡빡한 연주 일정… 짬나면 바이올린 없는 여행 하고싶어
임지영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왼쪽 얼굴이 더 자신 있으니 그쪽으로 찍어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콩쿠르 때문에 다이어트할 시간이 없었다”며 걱정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스무 살 여대생이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스무 살에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1위를 차지한 임지영. 바이올린 부문에선 한국인의 첫 우승이다.
지난달 29일 귀국한 그를 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평범한 여대생처럼 많이 재잘거리고 많이 웃었다. 세계 정상급에 오른 연주 실력을 가지려면 예민한 성격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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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털어내는 그의 말에서 낙천적인 성격과 마음의 여유가 느껴졌다. 이번 콩쿠르 우승도 그런 성격이 일조한 게 아닌가 싶었다.
“콩쿠르 결선까지 가면 다 실력이 비슷하잖아요. 그땐 기교 연습이 중요한 게 아니죠. 잘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집중력, 그리고 컨디션 관리가 더 필요한 거 같아요.”
그렇다고 한 달 동안 열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기간에 연습을 설렁설렁 했다는 뜻은 아니다.
“콩쿠르 연습 때는 스스로 생각해도 제게 혹독하게 대했어요. 이성적으로 ‘이건 안돼, 저건 돼’라고 판단하면 그대로 행하는 거죠. 특히 연습할 때 ‘이 정도면 됐지’ 하는 빈틈을 스스로에게 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연습이 끝나면 다시 천하태평으로 돌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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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해보고 싶은 건 여행. 물론 바이올린 없는 여행이다. 콩쿠르 이후 갈라 콘서트 등 일정이 이어지는 와중에 딱 1박 2일이 비었다. 그는 아침 일찍 벨기에에서 파리로 넘어갔다. 파리의 친구들과 만나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등을 둘러보며 맛있는 식당에 갔다.
“콩쿠르 하느라 진이 빠졌는데 재충전할 수 있었어요. 몸은 좀 피곤했지만요. 여행을 하면 낯선 곳의 새로움이 늘 나의 내면을 깨우는 것 같아서 너무 신나요.”
그러나 당분간 바이올린 없는 여행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번 달과 다음 달 내내 빡빡한 연주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서울 스트링 콰르텟’의 콘서트는 그에겐 첫 공식 실내악 연주다. 이어 16, 23, 25일엔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원주시향, 김다솔, 손열음과의 협연, 다음 달엔 7일 평창스페셜뮤직페스티벌 개막연주회와 13일 독주회가 줄줄이 이어진다. 요즘 공식 연습시간은 4∼5시간이지만 개인 연습까지 치면 8∼9시간은 보통이다.
첫 앨범을 낸다면 그는 비에니아프스키의 작품을 고를 거라고 했다. “비에니아프스키는 바이올린의 쇼팽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색채를 갖고 있거든요. 첫 앨범인 만큼 가급적 많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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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콩쿠르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한 스테이지가 끝난 셈이어서 마음은 좀 여유로워졌어요. 하지만 다음 스테이지는 더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겠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잠시 했는데 지금은 ‘생각할 필요 없이 앞에 닥친 연주 일정을 잘 소화하자’는 마음뿐이에요. 아직은 많은 걸 해볼 나이잖아요.”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