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산 고리를 끊자/시민-감염자] 시민 비협조가 불안 키운다
요즘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질병 탓에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오긴 했지만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 의심자로 분류되거나 아예 진료 자체를 거부당할까 봐 정확한 증세나 거쳐 온 병원을 숨기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걱정과 불신으로 인한 거짓말이나 소극적인 태도는 자칫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정부나 의료기관의 투명성 못지않게 시민들의 정확한 정보 공개와 협조가 이뤄져야 더이상의 메르스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환자는 속이고 병원은 피하고
“열 조금밖에 안 나요. 기침은 기관지염이 있어서 나는 겁니다.”
8일 찾아간 서울 노원구의 한 이비인후과에서는 발열 등 메르스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의료진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 환자는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라 그렇다”며 한사코 메르스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간호사는 “비염 때문에 열이 나는 경우는 없으니 다시 검사받고 오시라”며 결국 환자를 돌려보냈다.
시민들은 병원 측이 진료를 거부할까 봐 메르스 의심 증세는 가급적 말하기 싫다고 입을 모았다. 회사원 손모 씨(32)는 “메르스 증상이 있다고 병원에서 안 받아준 76번째 확진자 사례 알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의료계에서는 환자가 모든 정보를 밝혀야 제대로 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최명재 상계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환자들이 거짓말하면 세계 어느 병원도 전염병을 막아 낼 재간이 없다”며 “문진 때 자신의 정보를 숨기면 많은 사람이 더 위험해진다”고 지적했다.
○ 원칙 지켜야 메르스 차단
전문가들은 설령 메르스 증상을 보이더라도 제대로 진찰받고, 자가 격리 등을 통해 병이 전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메르스 의심 증세를 보인 환자들의 격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닌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불안감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남 순창군에서는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B 씨(72·여)를 진료한 40대 의사가 자가 격리 기간 중 필리핀 여행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의사는 “격리 대상이 아니었고 순창군이 격리 통보를 늦게 했다”고 주장했다. 전북 김제시에 사는 C 씨(59) 역시 3일 고열로 병원을 찾았지만 8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지역주민 수백 명과 접촉했다. C 씨는 이 기간 동안 지역 병원에 이틀간 입원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자가 격리 조치를 받은 사람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천시 주민 김모 씨(31)는 “정부가 모든 걸 감시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증세가 있으면 환자 스스로 조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의료계에서는 자가 격리 관리 인력이 부족하고 모니터링 체계가 허술하지만, 시민들의 참여가 있다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현 시점에서는 환자 개인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자가 격리 중인 환자는 전염성 등을 고려해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건혁 gun@donga.com·임보미·박희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