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매니지먼트, 단숨에 3대 주주로… “경영참가” 공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죽은 시체를 먹는 독수리(벌처)에 빗댄 ‘벌처펀드’로 악명이 높은 만큼 ‘경영간섭→주가 띄우기→매각’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삼성물산 3대 주주 된 헤지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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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어소시에이츠는 3일 장내에서 삼성물산 주식 339만6387주(2.17%)를 주당 6만3500원에 사들였다. 투입된 자금은 총 2156억7058만 원. 이 펀드는 원래 삼성물산 주식 7729만540주(4.95%)를 갖고 있다 이번 추가 매입으로 경영 공시 의무 기준인 지분 5%를 넘게 됐다.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삼성물산의 가치가 상당히 과소평가된 데다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지난달 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1 대 0.35 비율로 합병해 9월 합병법인을 출범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에도 일부 금융권에서는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발표 당일 삼성물산 주가가 제일모직과 함께 상한가까지 치솟으면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 시세차익 노린 주가 띄우기?
증권 전문가들은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을 무산시키기 위해 실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가 주식을 매입한 가격은 삼성그룹이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5만7234원보다 6266원(10.95%) 높기 때문이다. 조윤호 동부증권 연구원은 “손실을 보고 팔겠다는 투자자는 없다”며 “결국 엘리엇이 얻으려는 건 시세차익”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공시가 나간 4일 삼성물산 주가는 전날보다 6500원(10.32%) 오른 6만9500원에 장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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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매니지먼트는 2003년 미국 P&G의 독일 웰라 인수 발표 때도 “웰라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주장하면서 법정 분쟁을 일으켜 주가를 크게 끌어올린 전력이 있다.
○ 삼성과 엘리엇 간 지분 경쟁 가능성도
삼성그룹은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합병을 진행시키려면 주가가 오르는 것이 유리한 만큼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주식 매수가 오히려 합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삼성 측에서는 지금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라고도 설명했다.
다만 걸리는 것은 삼성그룹의 삼성물산 지분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데 있다. 3일 기준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41%)과 삼성SDI(7.39%), 삼성화재(4.79%) 등 삼성 계열사 지분을 모두 합쳐도 13.99%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만약 작심하고 지금의 2배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면 합병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며 “이를 막으려면 삼성도 지분경쟁을 벌여야 하는 만큼 주가가 더 오를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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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04년 3월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가 삼성물산 지분 5%를 확보한 뒤 무리한 경영 간섭을 하다가 주가가 오르자 그해 12월 지분을 팔아 시세차익으로만 280억 원을 챙겼다. 대신 헤르메스가 삼성물산 지분을 팔고 나간 후 주가가 떨어져 비싼 가격에 산 개인투자자만 손해를 봤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정임수·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