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관련해 민관 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열었다. 박 대통령의 민관 합동회의 소집은 지난달 20일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지 14일 만이다. 그사이 감염이 확대돼 확진 환자 수는 30명, 격리 대상자는 13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박 대통령은 보다 일찍 전면에 나서 관련 부처들을 다잡고 사태 수습을 독려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줬어야 했다.
메르스 공포와 불안이 확산되면서 정부의 안이한 대처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가 “신종플루의 경우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300만 명 정도 감염됐을 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고 말한 게 알려지자 “300만 명의 환자가 나와야 정부가 정신 차린다는 말인가”라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전국적으로 500개가 넘는 학교가 휴업에 들어갔고, 음악회 등 각종 행사가 잇따라 취소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지역에는 고열 기침 등 메르스와 흡사한 증상을 보이는 학생이 14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 비상사태를 방불케 하는 단계가 아닐 수 없다.
주요 외신들이 한국의 3차 메르스 감염 환자 소식을 ‘이례적 사건’으로 보도하자 해외에서 한국에 대한 여행 취소도 잇따르고 있다. 메르스 의심 증세를 속인 한국인이 입국했던 중국과 홍콩에서는 반한(反韓)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한국의 이미지와 국가신인도가 크게 손상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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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세월호가 국민 눈앞에서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데도 정부가 초동 대처에 실패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때의 리더십 부재(不在) 현상이 다시 벌어지지는 않아야 한다. 어제 박 대통령 주재의 긴급점검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이 일제히 노란 점퍼 차림으로 나서본들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태 추이에 따라서는 국가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국민안전처 장관이 수습의 컨트롤 타워를 맡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경우 국무총리가 직접 지휘에 나서야 하지만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는 8일부터 국회 인사청문회를 가질 예정이어서 당분간 총리 공백 상태가 불가피하다. 결국 박 대통령이 매일매일 상황을 챙겨야만 경제와 나라에 주름살을 드리우는 재앙으로 번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메르스 의심 환자로 격리 대상인 50대 여성이 일행 10여 명과 버스로 이동해 골프까지 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일부 시민들도 이번 혼란에 책임이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메르스의 공기 감염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가 필요하다는 첫 권고를 내렸다. 이 여성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파괴력이 훨씬 큰 지역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