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기 맞은 영화감독 이만희의 흔적 좇아 영화배우 딸 이혜영과 시인 김지하의 만남
이혜영 씨가 직접 고른 아버지 이만희 감독 사진. “손으로 반쯤 가린 아버지 얼굴이 신비해서 좋다”고 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3일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만난 김지하 시인(왼쪽)과 영화배우 이혜영 씨. 이날 김 시인은 1974년 경찰에 체포되던 자신을 보며 오열하던 이만희 감독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형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외아들이라 형제가 없어 그 마음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게 인간 이만희의 인간성이었다.” 원주=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아버지의 별세 40주기를 맞아 용기를 낸 이 씨는 원주 토지문화관을 찾아가 김 시인을 만났다. 이 씨는 책 ‘영화감독 이만희’ ‘영화천재 이만희’와 ‘청녀’ DVD를 건넸다. 그러면서 김 시인에게 “직접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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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스팅에 대한 ‘농반진반’도 있었다. “당시 내가 워낙 드세고 욕을 잘했는데 그런 날 보고 가만히 웃으며 ‘영화에 나오면 히트 치겠다’고 한 것도 생각난다. 욕, 막말엔 추(醜)의 미학이 있다.”(김 시인)
이 씨가 아버지의 시나리오 작가 필명도 ‘추남’이었다고 들려주자 김 시인은 껄껄 웃었다.
이 씨는 “‘만추’ 제작자 호현찬 씨가 ‘이만희 감독과 하길종 감독이 오래 살았다면 한국 영화판이 바뀌었을 거다’고 했는데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김 시인은 “(동의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공공연히 그 말을 하고 다녔다”고 했다.
“한국 전통의 것을 제대로 살린 이 감독과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하길종이 함께 영화판을 이끌었다면 내가 꿈꾸던 문화 르네상스가 왔을 것이야. 이 감독을 희망으로 삼았는데 일찍 가시면서 꿈이 사그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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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엄혹한 반공 이데올로기 분위기 속에서도 작가적 신념을 지키려 애썼다. 1965년엔 영화 ‘7인의 여포로’에서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가 용공주의자로 몰려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 씨는 “아버지는 군사정권 시절에도 인간 각자의 사정을 세심하게 헤아리는 휴머니즘을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반공이 아니라 반전을 얘기하다가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김 시인도 “이 감독은 반전을 이야기했다”고 동의했다.
생전 이 감독은 영화 51편을 찍었지만 ‘만추’ ‘시장’ 등이 유실돼 26편만 남아 있다. 별세 이후 오랜 기간 잊혔다가 2000년대 이후 젊은 영화감독, 평론가들이 그를 다시 호명하며 재평가되고 있다. ‘만추’는 2010년 김태용 감독이 현빈과 탕웨이 주연으로 4번째 리메이크하며 세기를 뛰어넘었다.
김 시인은 대화를 마치며 “한국 영화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감독인데 영향력이 점점 사라지고 살려내려는 사람도 적다. 당신에겐 아버지지만 추억의 대상으로만 볼 인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씨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씨는 원주를 떠나며 “아버지 시대를 함께 산 김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려고 했는데 새로운 숙제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 50주기엔 사라진 ‘만추’ 필름을 꼭 찾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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