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못드는 네팔 르포] 한국 의료진만 심리치료교실 열어…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며 웃음 되찾아
잇따른 강진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네팔 신두팔촉 주(州) 상가촉 마을에서 14일 오후(현지 시간) 마을 어린이들이 대한적십자사 긴급의료단원들과 함께 한국 동요 ‘둥근해가 떴습니다’를 부르며 율동을 따라 하고 있다. 신두팔촉=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신두팔촉=박성진 기자
아이들의 시선은 박은영 대한적십자사 보건안전팀장(48·여)을 향했다. 흙이 잔뜩 묻어 시커멓게 더러워진 손으로 연신 율동을 따라했다. 입에서는 한국 동요가 흘러나왔다.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날 오전 9시경 열린 ‘일일놀이교실’은 끝날 줄 몰랐다.
6일부터 이곳에서 의료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는 네팔에 파견된 국제적십자사연맹 소속 27개국 중 유일하게 아이들을 위한 심리적 응급처치(PFA) 교실을 열었다. 그림 그리기, 퍼즐 맞추기, 노래 부르기 등 프로그램의 목적은 아이들을 잠시나마 웃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아이들은 한바탕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도 중간중간 공포에 사로잡혔다. 서미드 기리 군(7)은 “(지진이 났을 때) 너무 무서워 어디로 숨어야 할지도 몰랐다”며 “형의 손에 이끌려 급히 밖으로 나왔는데 바로 집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앙증맞게 춤을 추던 어니샤 네팔리 양(6)도 “언니랑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장이 내려앉아 머리를 다쳤다”며 반창고 붙인 머리를 내밀었다.
안타까운 장면 역시 잊혀지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상가촉 마을에선 옷 수선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3명의 엄마가 각자의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 많아야 18개월 된 아이 등 유아 3명과 엄마 3명이 한꺼번에 숨진 것이다. 마을을 안내해주던 선딥 기리 군(14)은 “마을 사람들이 ‘추위 타지 말라’며 (숨진) 아기들을 꽃기름으로 마사지해 줬다. 아줌마들이 아기라도 살리려고 했는데 결국 모두 죽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집도 학교도 사라졌지만 아이들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컴퓨터 공부를 좋아한다는 컵필 기리 군(14)은 “제 꿈은 컴퓨터 공학자가 되는 것이에요. 빨리 학교가 다시 문을 열어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교사를 꿈꾸는 시타 기리 양(13)은 “그림 그리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림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미술선생님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신두팔촉=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