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여야 합의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가 합의해서 당초 약속한 처리 시한을 지킨 점은 의미가 있지만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을 50%로 올리기로 한 데 대해서도 “국민 부담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먼저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며 마치 담임선생님이 학생 점수 매기듯이 지적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재정 절감 효과가 미미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두 배로 올려야만 지급 가능한 ‘소득대체율 50%’ 안에 합의하는 바람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나온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장기적 통합이라는 당초 목표에는 아예 근접하지도 못했다. 이런 개악(改惡)에 박 대통령은 남의 일 이야기하듯 논평과 지적만 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에서 돌아온 뒤 건강 문제로 일주일간 휴식을 취하다 어제 처음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했다. 대통령이 없는 사이 조윤선 대통령정무수석은 새누리당 지도부와 가진 공무원연금 대책회의에서 “강한 재정 절감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뜻을 전했으나 반영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 전에 새누리당 지도부와 만나거나, 외국에 나가서라도 전화를 하든지 해서 ‘물러설 수 없는 원칙과 방향’을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그런 노력 없이 ‘합의 시한’에 매달린 여당 지도부가 야당과 야합하다시피 합의한 내용을 놓고 박 대통령이 뒤늦게 ‘논평 정치’를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라 할 수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 이어 유승민 원내대표까지 비박(비박근혜)이 당 지도부를 장악하고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성완종 메모’에 등장한 이후로는 새누리당이 청와대를 무시하고 여야 협상을 주도하는 ‘역(逆)불통’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 쪽에서 오히려 당청 협의를 제대로 안 한다는 불만을 새누리당에 제기할 정도라고 한다. 그럴수록 박 대통령은 전체 국민을 대변해 여야 의원들과 공무원들을 설득하면서 공감대를 넓히는 광폭 정치를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부실 개혁에 따른 민심의 이반을 과연 수습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