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 전 빅이슈코리아 편집장
처음 일주일간은 두문불출했다. 자고 싶은 만큼 잠을 잤고 입맛이 당기는 대로 먹었다. 그런데 조금씩 불안감이 밀려왔다. 당장 해결해야 할 집세와 밥값이 방안을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보험료도 내야 하는데 이건 또 어떻게 해야 하지? 30대 후반에 접어들다 보니 이러저러한 현실적 문제 앞에 마냥 용감할 수만은 없었다.
일이 필요했다.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일을 찾아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고, 여가를 활용해 독립잡지 창간하면 삶이 행복해질 것 같았다. 그러던 중 평소 선망하던 기업의 채용공고를 발견했다. 기자 경력을 살릴 수 있는 홍보 업무이고, 내가 관심 있는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일하는 기업이라 가슴이 뛰었다. “서류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면접을 보러 오세요”라는 전화가 온 날, 세상이 내 리듬에 맞춰 춤추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결과를 접한 뒤, 나는 ‘왜 기회를 안 주나’라며 해당 기업을 원망했다.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가 적구나(世路少知音)’라는 최치원의 시구를 되새기며, ‘다시는 그쪽으론 발길도 돌리지 않겠다’는 유치한 다짐도 했다. “내게 (최고의) 한순간을 주세요”라는 후렴구가 있는 휘트니 휴스턴의 ‘원 모멘트 인 타임(One moment in time)’을 고장 난 라디오처럼 부르며 쓴 소주를 들이붓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이튿날이었다. 해가 중천에 솟아 있을 때 눈을 떴다. 라면으로 쓰린 속을 달래고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보는데 봄 하늘은 유독 파랬다. 소설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한 말씀만 하소서’가 생각난 것은 그때였다. 작가가 생때같은 아들을 잃고 부산의 한 수녀원에서 절규하던 시기의 이야기. “왜 내 아들이어야 하느냐”고 울부짖던 작가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내게 이런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면서 조금씩 절망을 딛고 일어나는 이야기를 되새겨봤다.
그렇다. 나 역시 “왜 내게 기회를 안 주느냐”만 따질 일이 아니었다. 내가 남들보다 기회를 더 얻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이미 직장에 세 차례 들어간 경험이 있으니, 세 번의 기회를 얻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극심한 청년실업 속에서 20대의 기회를 빼앗으려 했으니, 몰염치도 이만한 몰염치가 없다.
돌이켜 보면 나는 참 불평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에서는 놀 시간이 없다고 불평했고, 조금이나마 나눔에 참여할 수 있는 직장에서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투덜댔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물심양면으로 풍요로운 직장은 왜 내 몫이 아닐까’라며 신세 한탄만 하느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게 있었다. 단 한 번뿐인 내 삶을 제대로 살 ‘내 인생 최대의 기회’가 하루하루 내게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던 것이다.
이영민 전 빅이슈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