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흥 논설위원
이럴 땐 숱한 위기를 헤쳐 온 과정을 복기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노태우 정부 시절을 진지하게 돌아보면 좋겠다. 한국의 외교안보가 가장 창의적이고 생동감 넘쳤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을 과거에 13년간 모신 핵심 측근이었으니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경험과 노하우를 참고하기도 용이할 것이다.
1989년 2월 헝가리와의 수교를 시작으로 동유럽 국가들과 잇달아 국교를 수립하고 소련(1990년 9월), 중국(1992년 8월)과의 수교로 대미를 맺은 북방외교는 냉전시대에 갇혀 있던 대한민국의 새 지평을 열었다. 북한과도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분단 후 처음으로 공존공생을 실천에 옮기는 국면이 조성됐었다. 노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1992년 5월 북한 군인 3명이 철원 부근 비무장지대를 침투했다가 총격전 끝에 사살된 사건이 있지만 6공화국은 북의 도발이 가장 적었던 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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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과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잘못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외교안보 면에선 상당히 진취적이었고,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6공 인사들은 노 전 대통령이 인재를 적소에 배치하고 재량권을 준 뒤 그들에게 귀를 기울인 결과라고 말한다.
6공 이후 외교안보 정책은 유연성을 잃고 경직됐다. 북이 몰래 핵 개발을 하면서 도발을 일삼아 대응이 마땅치 않았다. 정권의 색깔에 따라 정책도 오락가락했다.
박 대통령은 통일과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북한과 일본에 대해 엄숙한 도덕주의를 내세우는 것만으론 교착 국면을 타개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더구나 ‘워싱턴 스쿨’에 편중된 외교라인이 ‘대통령 말씀’을 받아쓰기 하듯 따르는 데 급급한 마당에 과연 창조적인 정책이 나올지도 의문이다. 한국의 외교안보에 관해 종합적인 설명을 들으려면 대통령 외에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나도니 당국자들이 더 분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대북, 대외정책의 물꼬를 트는 선제적인 결단을 하되 외교안보 라인에 권한과 책임을 좀 더 주고 전면에서 약간 물러서면 어떨까 싶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