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사회부장
법원에서는 그보다 두 달 앞서 34세의 젊은 판사였던 부산지법 김백영 판사가 직권으로 위헌 제청 신청을 해 간통죄에 첫 반기를 든 인사로 기록돼 있다. 이듬해 법복을 벗은 뒤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해 온 김 전 판사는 이번 위헌 결정 직후 “봄을 알리는 한 마리 제비가 되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필자는 이젠 78세의 나이로 고향인 광주에 낙향해 있는 김 전 재판관의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봤다. 수필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지내고 있다는 그는 “국가의 형벌권이 과연 어디까지 간섭해야 하느냐가 내 문제의식이었다”며 ‘불효막심죄’를 들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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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 전 재판관은 ‘사생활 은폐권 침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사생활의 비밀에 속하는 행위를 국가의 공권력으로 단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이 되기 전 서울고검장 자리까지 20여 년간 검사로 일해 온 그가 국가의 형벌권이 과연 어디까지 작동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은 셈이다. 그는 “천하의 공권력이 그런 것까지 처벌하는 것은 촌스럽고 차원이 낮은 것이라는 게 내 소신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25년이 지나 간통죄는 압도적 다수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다. 김 전 재판관은 “당시 다른 재판관들에게 ‘지금은 내 주장이 소수지만 20년, 30년 후에는 반드시 내 주장이 다수가 돼서 간통죄가 폐지될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내 말이 맞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마침 ‘김영란법’이 화제가 되고 있어서 견해를 물었지만 그는 깊은 얘기는 피했다. 다만, “법망(法網)과 어망(漁網)이란 말이 있다”라고만 했다.
무슨 뜻일까. 다른 법조인에게 해석을 요청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고기 잡는 그물이 촘촘하면 잔챙이까지 다 잡힌다. 그러면 어부는 잔챙이를 살려줄 수도 있고 몽땅 잡아갈 수도 있다. 법망도 마찬가지다. 법망이 촘촘하게 돼 있으면 사회가 깨끗해질 것 같지만 법 집행자의 마음에 따라서 집행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게 된다. 더 큰 불공평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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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