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정치부장
8월 경선일을 며칠 앞두고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전격 회동했다. 공개적으로 ‘이명박 지지’를 선언한 YS가 JP와 만나는 장면에 양 캠프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치권에선 이번 회동을 통해 JP가 YS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실상 이명박 지지를 한 것으로 평가했다. 박 대통령과 사촌형부 JP가 등을 돌린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JP가 사석에서 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여성 대통령은 시기상조’라는 뜻을 강하게 피력해 놀란 적이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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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의 반격에는 ‘집안’을 뛰어넘는 구원이 깔려 있었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1996년 총선 직전 자민련이 구미에 출마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왔지만 나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썼다. 자민련은 JP가 창당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1997년 대선에서 JP가 참여한 ‘DJP 연합’에 맞선 이회창 지지를 선언했다. JP는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해묵은 ‘앙금’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JP의 손을 잡기까지 8년이 걸렸다.
JP와 이회창도 1997년, 2002년 두 차례 대선에서 편치 않았다. 2002년 대선 막판에 이회창 측근들은 JP와의 화해를 주선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당시 이회창 측근들은 요즘도 “JP만 잡았으면 무조건 대선에서는 이겼을 텐데”라며 아쉬워한다. 이회창도 JP 부인 빈소에서 오랜만에 JP와 손을 잡았다.
JP는 정치 현장의 고비 고비마다 승부를 걸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차지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팽팽한 대치전에서 약간의 힘으로도 균형추를 뒤흔들 수 있다는 승부의 생리를 터득했을 것이다. 냉혹한 1인자의 길을 접으면서 생겨난 2인자의 여유가 정치적 동력이었다. 그러면서 여야를 넘나들었다.
일각에선 ‘줄타기 정치’라는 혹평도 쏟아지지만 JP가 현실정치의 세력 균형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JP가 “월남의 패망을 예측한 박정희 대통령보다 못하다”고 평가절하한 헨리 키신저(전 미국 국무장관)가 외교 현장의 세력 균형을 역설한 대표적 인물이라는 점은 상당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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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JP가 후배 정치인들에게 정치와 절연할 것을 주문한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정치가 허업”이라는 통찰을 가슴 깊이 새기고 정치를 하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국민이 호랑이고, 변화무쌍하다고 해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정치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정치의 이 같은 본령을 잊어버리는 정치가 더 무서운 재앙이다. 정치적 격동기를 함께 헤쳐 온 부인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낸 JP가 ‘지기 전에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싶어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