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워싱턴 특파원
후보자 뒤에는 부인과 전처에게서 얻은 아들딸이 앉아 있었다. 가족들이 원할 경우 청문회에 참석하도록 하는 의회 전통에 따른 것이다.
설리번 의원은 가족에 대한 감사 인사 후 미사일방어(MD)체계 등 군사 현안에 대한 질의를 이어갔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슬람국가(IS)’ 대응 전략을 비판했으나 고성 대신 논리 싸움이 이어졌다. 가족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최근 워싱턴에서 지켜본 두 건의 인사청문회 장면이 떠오른 것은 10, 11일 열린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멀리 미국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본 이 총리 후보 청문회는 이전 청문회들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신상 검증과 정책 검증이라는 청문회의 두 가지 기능 중 한 가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최대 쟁점이던 ‘언론 녹취록’ 파문도 여야 간 고성에 파묻혀 유야무야됐다.
미국은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하다가 미국의 경우 후보자 가족이 청문회에 참석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후보자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가족들이 있어 청문회가 비교적 차분하고 진지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었다. 미국은 연방수사국(FBI) 등이 후보자의 신상 검증을 미리 하기 때문에 청문회는 주로 정책 검증 위주로 진행되지만, 아무래도 후보자 가족이 지켜보니 여야를 떠나 최소한의 격을 지키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우리도 후보자의 가족을 출석시키면 어떨까. 아무리 얼굴이 두꺼운 정치인이더라도 가족이 보는 앞이라면 후보자에게 필요 이상의 인신공격을 삼가고 청문회를 파행시키는 일이 약간이라도 줄지 않을까. 가족 중에 병역 등 의혹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청문회장에서 즉석 해명을 하거나 제대로 밝혀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불필요한 공방이 줄어 정책 검증에 할애하는 시간이 더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제안도 물론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000년 도입돼 16년째를 맞는 한국의 청문회 문화는 당장 뭐라도 해야지 그냥 놔두기엔 너무 창피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승헌 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