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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메드] (인터뷰)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정확한 기록과 관찰의 삶

입력 | 2015-02-11 09:38:00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정확한 기록과 관찰의 삶




식물세밀화란 ‘식물을 식별하기 위해’ 식물종의 형태를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이것은 식물화와는 다르다. 식물화가 아름다움을 위해 그린 그림이라면 식물세밀화는 과학을 기반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러한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식물세밀화가는 국내에 많지 않은데 이소영 식물세밀화가(이하 작가)가 그중 한 명이다. 하나의 식물종이 가진 형태적 특성을 그리기 위해서는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녀의 정확한 기록과 관찰의 삶을 따라가 봤다.
 
EDITOR 곽은영 PHOTOGRAPHER 권오경
 
 
우리나라에서는 식물화와 식물세밀화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있다. 식물세밀화라고 검색했을 때 나오는 그림들도 대부분 식물화에 더 가깝다. 식물세밀화는 외국에서 발전된 문화로 유럽에서는 수백 년의 연구 역사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50년도 채 되지 않은 분야이다.
 
“식물세밀화는 보타니컬 아트(Botanical Art)라고도 해요. 보타니 인아트(Botany in Art: 예술 안에 있는 식물), 즉 식물화가 아니라, 아트 인 보타니(Art in Botany: 식물학 안의 예술), 즉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지요. 쉽게 설명하면 식물화는 아름다움을 위한 것으로 예술 안에 있고, 식물세밀화는 식물의 식별을 목적으로 종의 형태를 정확히 기록하는데 의미가 있는 일종의 기록물인 거예요.”


식물학 안의 예술 ‘식물세밀화’
 
일반적으로 식물의 품종을 구분할 수 있게 그려졌다면 식물세밀화, 그렇지 않으면 식물화라고 이해하면 쉽다. 보통 식물을 구분할 때 꽃의 색깔이나 잎의 모양으로 식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식물의 특징은 수술의 개수나 암술의 머리 형태 등 세세한 미세구조로 드러난다. 그런 것까지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식물세밀화이다.
 
“식물세밀화는 기본적으로 형태를 중요시하지만, 그중에는 색이 있는 것도 많아요. 하지만 저는 형태를 선택했어요. 색이 있을 경우 색의 강렬함 때문에 다른 형태가 잘 드러나지 않더라고요. 저는 기본에 충실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야 오래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소영 작가가 처음 식물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어린 시절 식물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뒷산인 관악산에 자주 올랐다. 덕분에 식물에 많은 관심을 두게 됐고 대학에 진학할 때 원예학을 선택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대학교 3학년 때 식물화를 그리다 졸업 전 국립수목원에 들어가 식물연구를 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식물세밀화를 배워서 그렸어요. 지금은 이렇게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9년이 됐네요.”
 
관찰과 수집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식물세밀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그녀에게 식물은 삶의 모든 것이 됐다. 여행을 갈 때도, 영화를 볼 때도, 노래를 들을 때도, 시나 소설을 읽을 때도 식물에 더 눈길이 갔다. 모든 것이 식물 중심이 되었다. 그녀는 특히 작업을 위한 식물 수집의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한다.
 
“식물세밀화 작업을 시작하던 초기에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한국특산식물인 개느삼을 그리게 됐는데, 강원도 양구 자생지에 조사하러 가서 혼자 헤매던 기억이 있어요. 또 한겨울에 급히 가문비나무 암수꽃을 그려야 했는데, 우리나라에는 생체는 물론, 표본조차 없어서 중국의 표본관에서 표본을 공수해 와 그린 적도 있고요. 원예종의 경우, 블루베리 품종을 그릴 때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블루베리 농장에서 품종별로 수집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배우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Tip. 식물세밀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식물에 대한 이해와 조사를 위한 체력, 식물을 오랫동안 깊이 관찰할 수 있는 집중력과 끈기. 이런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식물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비롯된다.
우리나라는 막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식물에 대해서 일반인이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다. 서울숲, 수목원, 식물원 등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 정도가 있다. 식물에 관심이 있으면 인터넷을 통해 관련 기관의 교육과정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
 
 
꼬박 1년이라는 시간
 
보통 식물 한 종에 대한 세밀화 작업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년이다.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모두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남녀를 구분할 때 생식기관으로 먼저 구분하듯 식물에서도 꽃과 열매와 같은 생식기관은 분류키가 되기 때문에 기록이 중요하다.
 
“어떤 식물에 대한 식물세밀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우선 그 식물에 대한 정보와 논문들을 찾아봐야 해요. 식물에는 식물이 속해있는 ‘속’이라는 단위가 있는데, 식물의 가족 단위라고 생각하면 돼요. 유사종 식물들과 내가 그릴 식물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먼저 찾아서 분류키를 알아야 해요. 그리고 식물의 자생지를 직접 찾아가요. 가서 식물의 생태적인 모습을 최대한 스케치하고 나중에 또 그릴 수 있도록 식물을 채집해 와요. 초본의 경우에는 뿌리까지 채집하는데, 채집해온 식물은 작업실에서도 계속 그려요.”
 
식물세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을 보면서 그리는 게 아니라 식물의 개체를 직접 보고 그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채집해온 식물을 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식물을 표본으로 만들어 기록물을 남긴다.
 
“요즘과 같은 겨울에는 못 그렸던 그림을 완성하며 표본 라벨을 만들어요. 그리고 겨울에도 푸른 전나무와 소나무와 같은 식물들을 그려요. 겨울이라고 식물들이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겨울눈을 틔우는데, 목본의 경우에는 그 겨울눈도 열매나 꽃처럼 분류키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려야 해요.”
 

식물의 이름을 부르면 바쁘고 팍팍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식물을 키우며 위로를 받거나 숲에서 힐링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소영 작가도 예전에 비해 숲이나 식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주변 친구들을 봐도 식물 키우는 친구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어떤 분은 이게 유행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저는 유행이 아니라 시작단계라고 생각해요. 국가적으로도 식물 관련 연구자들을 많이 원하고 있고 식물원과 수목원이 계속 늘고 있어요. 식물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일반인들도 부쩍 늘었고요.”
 
이소영 작가는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이 식물은 일주일에 물을 몇 번씩 줘야 하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지만, 같은 식물이라도 환경에 따라 다르므로 관찰하면서 키우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겨울에도 어떤 곳은 춥고 어떤 곳은 난방을 많이 해서 건조하잖아요. 개체에 따라서 다르므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물종의 정확한 이름을 아는 것인데, 사람도 처음 보면 이름을 먼저 물어보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잖아요. 식물도 정확한 이름과 품종명을 정확히 알아야 이 식물이 어떤 환경을 좋아하고 물은 얼마만큼 줘야 하는지 기본적인 지식을 알 수 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도 식물을 형태로 구분해서 품종명까지 알 수 있게 하는 작업이에요.”
 
식물의 이름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소영 작가는 인터넷 검색은 100% 믿을 것이 못 된다고 말한다.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명인데, 동물이 아프면 동물병원에 가서 물어보듯 식물도 전문가에게 찾아가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는 것이다. 수목원이나 식물원 홈페이지에 질문을 올려놓거나 근처 꽃집에라도 가서 물어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보통 육계나무 껍질을 계피라고 하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면 계수나무 껍질을 계피라고 명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것은 중국식 표현이에요. 우리나라의 육계나무가 중국에선 계피나무라고 불리는데, 정확히는 육계나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아요. 이런 경우는 번역 소설이나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유럽 소설과 시에 자주 등장하는 너도밤나무를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너도밤나무라고 번역해서 쓰는데, 사실 우리나라 말로 제대로 번역하면 ‘유럽너도밤나무’예요. 우리나라의 너도밤나무는 따로 있거든요.”

 

이것도 허브식물일까?
 
국내에서 식물세밀화의 대상이 되는 식물은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식물들이다. 원예종보다는 자생종을 많이 그린다는 의미다. 자생종 중에서도 특산식물 혹은 멸종위기 식물이 우선이다.
 
“이렇게 희귀한 식물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고 주변에 있는 식물들부터 식별하는 것도 중요해요. 제가 쓴 <세밀화집 허브>에는 우리 주변에 있는 채소와 허브식물들을 많이 그렸어요. 그래서 원예종, 즉 재배종이 많아요.”
 
보통 허브라는 명칭 때문에 외래종만 허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허브는 약용식물로 이용할 수 있고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식물 모두를 일컫는다.
 
“잠재적으로 모든 식물이 허브가 될 수 있어요. 로즈마리가 허브인 이유는 스테이크와 같은 요리에 얹어서 구우면 냄새를 없애주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에서도 돼지고기를 삶을 때 파와 양파를 넣는데 그게 돼지고기의 잡내를 없애줘요. 우리도 이미 허브식물들을 애용해 왔던 거예요.”
 
허브 식물에는 고수, 마늘, 생강, 계피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소영 작가는 ‘이것도 허브식물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식물은 대부분 허브식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줬다. 향으로 음용하고 각성작용과 항산화 효과가 있는 커피도 허브식물이다.
 
이소영 작가는 재작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 함께 열린 학회에서 식물세밀화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식물세밀화가들이 어떤 식물종을 주로 그리고, 또 덜 그리는지에 관한 논문이다.
 
국내에서는 처음 발표되는 내용으로, 식물세밀화를 그릴 때 식물종의 중복 없이 다양한 종을 기록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는 개념으로 접근한 것이다.
 
“식물세밀화가는 식물과 같은 호흡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식물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내는 게 곧 저의 삶이니까요. 사계절 내내 하루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 식물들이기에 항상 온 신경을 쏟아야 해요. 저는 들과 산의 여느 식물들처럼 누군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묵묵히 제 일(기록)을 해내야 하는 운명을 가진 것 같아요.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행복한 마음이에요.”

TIP. 서울 내 식물원 추천
 
서울에서는 홍릉수목원을 추천한다. 국립수목원인 광릉수목원에도 다양한 종이 자생한다. 광릉수목원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가까워서 드라이브 겸 들르기에 좋다. 광릉수목원이 속해 있는 광릉숲은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이라 푸른 공기를 즐기기에도 좋다.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 취재 곽은영 기자(kss@egihu.com), 촬영 권오경 사진기자